2009년 이후 5년 만에 컴백, '콰이어트 나이트' 오늘 발매
"한물간 가수" 자칭하며 약한 모습, 2만5000명 관객 앞 감격하기도
“오랜만이죠. 보고 싶었어요. 너무너무 좋아요.”
서태지가 돌아왔다. 5년간의 침묵을 깨고 20일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를 발매한다. 이에 앞서 1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컴백 공연 ‘크리스말로윈’을 열어 팬들과 만났다.
팬들은 티켓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사전 판매하는 9집 앨범을 구매하기 위해 오전부터 공연장 앞에 줄을 섰다. 서태지컴퍼니 추산 2만5,000명이 모였다. 서태지는 첫 멘트 때 감격에 겨워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활동 공백기였던 5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2011년 이지아가 제기한 위자료 청구소송으로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었다. 2013년 결혼 발표 직후에는 오랜 팬들 중에 등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오랜만에 팬들 앞에 서는 무대가 감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항상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음악을 하고 새로운 장르로 팬들을 이끌어가는 서태지였지만 이번 콘서트에는 옛 팬들을 위한 특별한 선물이 많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수록곡 ‘내 모든 것’을 22년 만에 불렀다. ‘응답하라 1994’에 등장한‘너에게’를 록 버전이 아닌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원곡으로 불렀다. ‘하여가’‘교실이데아’‘컴백홈’은 이주노와 양현석 대신 엠넷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기를 모은 스윙스와 바스코가 특별 출연해 함께 공연했다.
여기까지 보면 서태지가 단순히 ‘90년대 열풍’에 편승한 것 같지만 9집 신곡을 들어보면 그 시절을 돌이켜 보는 것이 새 앨범에 중요한 주제임을 알 수 있다. 서태지는 신곡 ‘나인티스 아이콘’을 소개하면서 자신을 가리켜 “한물간 별 볼 일 없는 가수”라고 말했다. “한물간 나인티스 아이콘 / 화려한 재기의 기회가 언제일까 망설이네 / 질퍽한 이 망상 끝을 낼까”라는 가사는 옛 영광과 대중의 관심의 무게에 짓눌린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무대도 초반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첫 번째 곡인 ‘모아이’, 아이유와 함께 꾸민 ‘소격동’에서도 목소리가 흔들렸다.
하지만 마냥 주저앉지는 않았다. 4집‘시대유감’을 거치면서 관객들의 열기가 피어 오르자 안정을 찾았다. 공연 막바지에 스윙스가 “이 분(서태지)보다 모험을 많이 한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는 없다”며 프리스타일 랩으로 분위기를 띄우자 서태지 자신도 과격한 단어를 사용하는 등 공연에 완전히 취했다.
사람들은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 가사를 담은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을 보고 “서태지는 여전히 강인하다”고 말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서태지는 그 간의 상처가 누적된 듯 약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팬들이 서태지를 있는 그대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서태지 9집은 ‘정현철(서태지의 본명) 1집’인 셈이다.
크리스마스와 할로윈을 결합한 단어 ‘크리스말로윈’은 영화‘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연상시킨다. ‘호박의 왕’으로 불리는 주인공 잭 스켈링톤은 할로윈 마을의 지도자다. 그는 오랫동안 할로윈을 이끌었지만 부담에 지친 나머지 산타클로스를 납치하고 어울리지 않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면서 되찾은 열정으로 최고의 할로윈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한 후 제자리로 돌아간다.
지친 서태지도 무대에서 팬들을 만나 힘을 얻었다. 그는 잭 스켈링톤처럼 다시 ‘호박의 왕’이 될 수 있을까. 서태지 공연의 마무리를 장식하곤 했던 ‘테이크 파이브’무대에서 마음의 짐을 벗어던진 듯 유난히 상쾌했던 서태지의 미소를 보면 그럴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긴다.
인현우기자 inhy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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