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특파원 칼럼] 마음 얻는 게 통일의 첫걸음

입력
2014.10.19 14:31
0 0

“결국 너희도 중국인이지 않느냐.”(친중 단체)

“우린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다.”(민주화 시위대)

최근 홍콩 민주화 시위 취재 현장에서 들은 공방이다. 중국과 홍콩의 극명한 시각 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실 겉보기도 중국과 홍콩은 완전히 딴 나라다. 말부터 안 통한다. 같은 중국어라 해도 베이징(北京)은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普通話)를 쓰지만 홍콩은 사투리인 광둥화(廣東話)와 영어를 사용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홍콩 대학생들은 푸퉁화로 질문을 던지면 아예 영어로 답하곤 했다. 경제뿐 아니라 문화의 수준도 차이가 난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이미 4만달러가 넘었지만 중국은 아직 7,500달러 안팎이다. 신호를 지키는 걸 보기 힘든 중국과 달리 홍콩에선 신호를 어기는 경우를 찾기가 힘들다. 새치기가 난무하는 중국 베이징(北京)의 서우두(首都)공항과 여권을 확인하곤 한국말로‘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네는 홍콩 첵랍콕공항은 후진국과 선진국 차이를 보여준다. 돈도 다르다. 1위안부터 100위안까지 몽땅 마오쩌둥(毛澤東)의 초상화가 그려진 중국 위안화는 홍콩에선 쓸 수 없다. 환전해서 써야 하는 홍콩달러 동전에선 마오쩌둥 대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말씀 자료집만 쌓여있는 중국 서점들과 달리 홍콩 서점에는 중국공산당 고위층의 막후 권력 투쟁과 쿠데타 음모 등을 다룬 책까지 널려 있다.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지만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는 홍콩인은 많지 않다. 중국인은 홍콩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며 ‘회귀’라고 감격해 했지만 홍콩인은 회귀의 첫 조치로 인민해방군이 주둔하는 것을 보며 가슴을 쓸어 내려야만 했다. 이후 홍콩이 점점 중국처럼 변해가는 데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홍콩 민주화 시위는 이러한 홍콩인의 반중국 정서를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후보를 사실상 친중국 인사로 제한한 중앙 정부의 결정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홍콩의 주권이 중국 중앙 정부에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홍콩 정부는 홍콩인의 것이란 게 홍콩인들 생각이다. 이걸 양보하면 홍콩은 중국화할 수 밖에 없고 그 순간 자신들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란 게 이들의 우려다.

중국과 홍콩의 갈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언젠간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북녘의 땅과 주민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또는 준비 과정을 거쳐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남과 북이 서로 정서적인 이질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더 큰 사회적 갈등만 낳게 될 것이다. 홍콩인이 중국인과 다르다고 강변하듯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을 ‘조선인’이라며 ‘한국인’과 구별하려 들 수도 있다. 더구나 홍콩인이 불과 700만명으로 중국 전체 인구의 0.5%에 불과한 데 비해 북한 주민들은 남한 인구의 50%나 된다. 어쩌면 정치적 통일 이후에도 진정한 정서적 통일을 위해선 홍콩보다 훨씬 긴 시간과 홍역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교류부터 활성화해 자주 만나는 게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체육 교류와 겨레말큰사전 사업이 재개된 것은 의미가 크다. 만났을 땐 물론 상대방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상대방을 비방하는 것은 평소 자제할 줄 아는 지혜도 요구된다.

통일은 민족의 운명이다. 그러나 통일 후의 혼란과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통일 전부터 북한을 끌어 안기 위한 노력을 다하며 북한 주민들로부터 마음을 얻어야 한다. 남북한은 하나라는 공감대가 훼손돼선 안 된다. 진정한 통일을 위해 우리가 무슨 일부터 해야 하는 지 홍콩 민주화 시위가 가르쳐주고 있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