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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탓 암 발병' 법원서 첫 인정… "손해 배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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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탓 암 발병' 법원서 첫 인정… "손해 배상하라"

입력
2014.10.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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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선 노출-갑상선암 인과관계 통계적 유의미성 밝힌 논문 근거로

고리원전 인근 주민 박모씨 일부 승소… 남편 직장암·아들 발달장애는 불인정

원전 주변 지역 주민의 암 발병에 대해 원전 측의 책임을 인정하는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에서 인정된 갑상선암 외의 다른 암에 대해서도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인지 주목된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최호식 부장판사)는 17일 고리원전이 인접한 부산 기장군의 박모(48ㆍ여)씨 등이 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박씨에게 1,500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박씨가 6기의 원전이 있는 고리원자력본부로부터 10㎞ 안팎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방사선에 노출되는 바람에 갑상선암 진단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피고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12년 2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으며 같은 해 7월 남편 이진섭(50)씨도 직장암에 걸렸다. 이들은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 균도(22)씨와 함께 기장군 장안읍과 일광면 등 고리원전 반경 10㎞ 안에서 약 20년을 살았다. 박씨 등은 자신들의 질병이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며 2012년 7월 한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 부자는 2011년 3월부터 발달장애인법 제정 등을 촉구하며 ‘균도와 세상걷기’라는 이름으로 전국 도보투어를 해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법원은 박씨에 대해서만 원전의 발병 책임을 인정했을 뿐 남편과 아들의 질병인 대장암과 자폐증에 대해선 배상 책임을 기각했다. 갑상선암의 경우 여성에 한해 원전 주변의 발병률이 높고, 갑상선과 방사능 노출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학연구원 원자력영향?역학연구소가 2011년 4월 정부에 제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원전에서 5㎞ 이내에 거주하는 여성에게서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전에서 30㎞ 밖에서 거주하는 여성보다 2.5배 높다는 사실이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재판부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서 최근 3년 6개월간 암 종합검진을 받은 부산 기장군민의 3.1%가 암 진단을 받아 수도권(1.04~1.06%)을 압도했고 이 가운데 갑상선암 환자가 가장 많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다른 암 환자들의 유사 소송으로 확산될 계기가 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의학연구원의 논문은 1991년 암이 없던 주민 3만여명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해 20년간 관찰한 원전 지역 암 발병 관련 역학조사였는데, 이 연구에서 직장암과 대장암 등 ‘방사선 관련 암 7종’ 중 갑상선암을 제외하고는 원전 지역 거주기간과 원전과의 거리에 따른 추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도 아동이 걸린 백혈병과 성인 갑상선암의 통계적 일관성 외에 직장암 등이 원전과 관련된 것으로 입증된 사례는 없다는 게 학계의 설명이다.

하미나 단국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인) 세슘은 체내에서 모든 세포에 고루 분포돼 모든 암을 유발할 순 있지만, 사고나 시설고장이 없는 한 원전에서 수증기나 냉각수를 통해 과량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밝히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체르노빌같은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갑상선암 외에 다른 암들이 생길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도 2심에서 다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수원은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특히 통계적 의미를 가진 역학연구를 근거로 인과관계를 인정한 판단이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연구논문의 연구책임자였던 안윤옥 서울대 명예교수는 “해당 연구 결과는 통계적인 유의미성을 밝힌 것일 뿐, 원전에서 나온 방사선과 특정 개인의 갑상선암 발병 사이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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