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1만9,000여명에 달하는 피해 학생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 등에 비춰보면 학생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국가가 관리, 주관하는 시험에서 문제 오류가 발생했더라도 출제 과정에서 국가의 명백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입증돼야만 배상 책임이 인정된다”는 판례 취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2001년 4월 대법원이 사법시험 36회 문제 오류로 피해를 본 설모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대법원은 “객관식 문제가 조금 미흡하거나 정확하지 못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수험생이 문제의 의미 파악과 정답항의 선택을 그르치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오답이 아니라면 국가에 배상책임을 묻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의 이 같은 입장은 이후 다른 국가고시 손해배상 사건에도 적용됐다. 2004년 서울고법 민사14부는 강모씨 등 감정평가사 자격시험 응시자 41명이 “시험 문제 출제오류로 불합격 처리돼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시험문제 출제 오류로 원고들이 불합격처분을 당한 사실은 인정되나, 법령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출제위원을 선정했고 출제 당시 이견이 없었던 점 등으로 미뤄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행정법에 정통한 한 현직 법관은 “평가원이 출제 과정에서 오류 가능성을 미리 알고도 대응을 안 한 수준의, 명백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고, 그러한 사실이 법정에서 입증돼야 손해배상 가능성이 생길 것”이라며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이 다를 정도로 예민한 문제 오류 상황을 고려하면, (대법원의 판결과 별개로) 민사적 손해배상에서 피해 학생들이 승소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전망했다.
다만 법원 일각에서는 수학능력시험이 가진 중요성 등을 고려할 때 새로운 판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시험이나 감정평가사 시험 등과 달리, 수학능력시험은 국가 교육의 가중 중요한 축 중 하나”라며 “피해자의 규모나 (수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이미 여러 번 수능 출제 오류가 있었지만 거기에 대한 대법원의 일관된 견해가 없는 점 등을 볼 때 (기존 손배 소송과 달리) 다소 느슨한 수준의 입증이 있더라도 손해배상을 인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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