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에는 요즘 ‘이 지역 아파트 단지에는 놀이터가 필요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한다. 놀이터에서 놀아야 할 연령대의 아이들이 죄다 학원이나 공부방에 있기 때문이다. 유년기부터 입시의 늪에 발을 담글 수 밖에 없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이 입시라는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입시제도 자체가 가진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기성세대가 공고하게 쌓아놓은 학벌사회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이 성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교육이었고, 교육을 통한 성장이 거듭되면서 ‘공부 잘하는 것’은 곧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됐다. 공부를 잘해 ‘성공’한 이들은 ‘학벌’이라는 울타리를 쳤고, 뒤 세대들에겐 ‘울타리에 들어오려면 자격을 갖추라’고 요구해왔다. 관료집단, 기업인 등 학벌로 연결된 기성세대와 기득권층이 대학 서열화를 강화했고, 그 결과 고교등급제, 과도한 사교육, 유아기부터의 경쟁 체제 구축 등 각종 교육 병폐가 발생했다. 교육의 목적이 학벌에 맞춰지면서 ‘놀이’와 ‘시민 양식’은 사라지고 ‘스펙’과 ‘등급’, ‘내신’이 교육의 가치가 됐다.
이처럼 교육이 왜곡되면서 학교 현장의 행복은 사라졌다. 우리나라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은 14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청소년 자살율도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어린이ㆍ청소년 행복지수는 6년째 최하위다. 안쓰럽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다.
바꿔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정부와 기업, 학교, 교사, 부모 등 기성세대 모두가 이 참담한 현실을 지금의 아이들 세대에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있다. 한국일보의 ‘교육희망 프로젝트’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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