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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을 체험 중심의 맞춤형 개별화 수업으로 바꿔야"

입력
2014.10.18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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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제 선발 비율 너무 높아… 대학 수시모집이 고교 등급제 원인

'우리 대학은 이렇게 뽑는다' 등 대학도 투명한 전형으로 신뢰 높여야

쉬운 시험문제·스펙 쌓기 치중 말고 고등학교도 믿을 만한 방안 내놓아야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자문단인 양정호(왼쪽부터) 성균관대 교수, 박거용 상명대 교수,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입시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한국일보 '교육희망 프로젝트' 자문단인 양정호(왼쪽부터) 성균관대 교수, 박거용 상명대 교수,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회의실에서 입시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대표

현재의 입시제도가 신뢰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학생의 수능 성적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격차를 보이면서 점수 이외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이명박 정부가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지만 효과가 없다는 게 증명됐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요구되는 학생의 다양한 교내외 활동 실적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가 된 탓이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입시가 불신의 대상이 된 시대. 당장 개선하지 않으면 더 이상 평등교육의 헌법적 가치를 지킬 수 없다는 위기감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지고 있다.

이에 한국일보는 ‘교육희망 프로젝트’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의 이야기를 통해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찾아봤다. 좌담회는 지난 10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일보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최근 입학사정관제의 허점을 노린 입시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봉사활동과 교내외 수상실적이 돈으로 만들어지는 실태는 대입 제도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이찬승=현재 교육의 틀이 이런 비리를 낳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본질적으로 교육은 공익과 사익을 모두 추구하는데 ‘스펙 쌓기’는 전적으로 사익에 집중되는 현상 탓이다. 교육 시스템은 공정성과 사회정의라는 바탕에서 작동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 교육이 그렇게 작동하고 있느냐가 문제다. 지금은 완전히 사익 추구에 맞춰지고 있다.

박거용=기본적으로 교육정책, 특히 입시제도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것이 문제다. 우리나라처럼 입시제도가 자주 바뀌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다. 또 입시가 초중등교육을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각각의 단계에서 자체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갖춰야 하는데 대입에 모든 교육이 맞춰져 있다. 아울러 대학 서열화가 가져오는 문제도 크다.

양정호=안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문제다. 제도가 자주 바뀌니 학부모, 수험생들이 대비를 할 수 없다. 안정성이 흔들리니 입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 교육정책을 세우는 정부가 추구하는 부분과 현장에서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 수 있는데 그 차이를 좁히기가 힘들다. 이번 ‘스펙 사건’처럼 위법ㆍ탈법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대학을 보내려고 하는 학부모들이 분명히 있지만, 정부는 정책을 만들면서 공정하게 제도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 결국 정책의도와 현장의 강한 욕구가 맞아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입시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박거용=문제가 없진 않지만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게 나쁘지 않다.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하는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같은 서류를 보고도 입학사정관마다 관점이 달라 객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대적인 객관성보다 상대적인 객관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자는 제도인데, 선발 비중이 너무 크다. 모집인원의 10%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이찬승=대학은 조건을 갖춘 학생을 뽑으려는 욕망이 있고 학생들은 상위권 대학에 들어가려는 욕망이 있다. 지금까지 이를 결정한 것은 수능과 내신(학생부 포함)이었는데 부모의 경제력이 점수에 반영되다 보니 점차 수능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는 추세다. 정부에서 수능 절대평가를 고려하는 것도 수능 점수보다 학교생활을 평가하는 것이 더 공정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어떻게 신뢰도를 높이느냐가 문제다. 청렴도가 높은 뉴질랜드는 입시비리가 발생하면 교장부터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엄벌에 처한다. 인간의 윤리성에 호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강력한 처벌이 작동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그게 약하다.

양정호=과거에도 입시비리가 많았다는 점에서 입학사정관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4~5년 전 일부 수험생이 허수 지원을 통해 서울 주요 대학의 경쟁률을 조작했던 사례가 있었다. 실제 입시를 치르지 않을 지원자들을 매수해 주민번호 등으로 원서를 접수시켜 경쟁률을 높이자 다른 학생들이 겁먹고 지원을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사법판결은 그 때만으로 끝난다. 입시 부정을 저지른 학생은 최소 3년 혹은 5년 동안 대학 지원자격을 박탈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공정사회를 위해서는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학생부 스펙 쌓기 문제도 두드러진다. 대학들은 사실상 고교의 등급을 매기고 있다. 입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런 문제도 해결되기 힘들지 않나.

이찬승=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절대평가를 도입해 교육환경이 열악한 농어촌에서 1등급 받은 학생과 서울 강남에서 1등급 받는 학생을 동일하게 적용하면 굉장히 좋은 거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선 ‘점수가 높은 강남 학생과 점수가 낮은 농어촌 학생에게 어떻게 같은 1등급을 주느냐’는 논리가 지배적이다. 고교등급제를 논리적으로 풀려고 하면 답이 없다.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분류해 뽑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고교 정상화를 이끌 수 있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런 전제만 있다면 본고사도 좋다고 본다.

박거용=중등교육에서 신체가 불편한 아이들이 비장애인과 같이 공부하는 통합교육이 서서히 번지고 있다. 장애 유무에 상관 없이 함께 살아가는 걸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사회 전반에 정착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분위기를 끌고 간다면 고교등급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대학 수시모집이다. 과거 수시모집 인원이 적었는데 지금은 정시모집 인원보다 더 많다.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를 통해 높은 등급의 고교출신을 선점하는 규모가 커지는 것이다.

양정호=50대 이상은 점수에 대한 신화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그분들이 학교 다녔을 때는 점수에 대한 신뢰가 가능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으로 점수를 상승시킬 수 있게 됐다. ‘전두환 시대의 학력고사로 돌아가자’는 말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고, 또 불공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부에 대해 긍정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내신과 인성을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완해야 될 부분은 A고와 B고에서 똑같이 준비해도 결과가 다를 경우 그 이유에 대해 대학이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교사와 학생 모두 불안해 하고, 결국 운에 맡기거나 무작정 스펙을 늘리는 식이 된다. ‘우리 대학은 이런 걸 보고 뽑는다’는 걸 대학에서 충분히 알려줘야 한다.

이찬승=대학도 그렇지만 고등학교도 성적평가를 믿을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학생부를 이상한 스펙들로 꽉꽉 채우고, 시험 문제를 아주 쉽게 출제해 모든 학생이 점수를 잘 받게 해주면서 대학 탓만 하고 있다.

양정호=내신과 면접도 마찬가지다. 많은 대학들이 내신 비중을 공개하고 있으나 학부모들은 잘 믿지 않는다. 내신 점수 차가 5점이라도 다른 요소로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 대학들은 영업비밀이라며 밝히지 않고 있는데 최소한 힌트라도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카더라’ 통신이 돌고 입시컨설팅 업체가 생긴다. 평가 기준의 공개는 대학 자율을 넘어선, 신뢰와 관련된 부분이다.

-대입 경쟁이 점점 어린 나이로 내려가고 있다.

양정호=교육에 관심을 가진 학부모 집단은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한다. 한국사를 수능 필수로 하니 초등학교부터 역사 사교육을 시킨다. 사교육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며 계속 넘어가다 보면 피해는 지금 어린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그대로 이어진다.

박거용=사교육의 선행학습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가계에 부담을 너무 주니 사회 문제가 된 것인데 결국 점수 객관주의에서 벗어나야 이 문제도 풀린다.

양정호=불가능하겠지만 개헌을 할 때 사교육의 일시적인 폐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했으면 좋겠다. 혹은 대학이 사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을 뽑겠다고 선언하거나. 지금 이대로 가면 부모 경제력에 따라 명문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할 시점이 올 것이다.

이찬승=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반대한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사교육이 성행하는 원인을 없애는 데 주력해야 한다. 사교육 감소를 너무 강조하면 교육 문제 해결 방법이 사교육에만 국한돼 버린다. 수능 문제를 EBS교재에서 70% 출제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래서 사교육 잡혔나? 공교육을 체험 중심의 학습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획일적인 교육과정에 12년간 아이들을 몰아넣으면 안 된다. 관심 분야에 따른 개별화 수업이 진행돼야 한다. 개별화 수업으로 취미와 지식수준이 서로 다른 아이들을 모두 끌어줄 수 있다. 혁신학교가 어느 정도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에 들어갈 돈을 어릴 때부터 체험교육, 개별화 수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거용=교육정책만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중립성을 지켜서 느리게 가더라도 한 번 합의를 하면 정권이 바뀌든 장관이 바뀌든 장기적으로 끌고 가는 포석을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정리=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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