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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파리대왕을 읽으며

입력
2014.10.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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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의 위험을 느낀 정부는 25명의 어린 소년들을 핵전쟁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옮기기 위해 비행기에 태워 나라 밖으로 보냈지만 남태평양에 추락하고 아이들은 무인도에 상륙한다. 아이들이 뽑은 대표자 랠프의 지휘에 따라 봉화도 올리면서 구조를 기다리며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랠프가 대표로 선출되자 잭은 실망한다. 구조를 기다리기 위해서는 바닷가에 오두막을 지어야 한다는 랠프와 사냥을 해야 한다는 잭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결국 잭은 로저와 함께 갱단을 만들어 무리를 이탈한다.

소년 하나가 죽자 섬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진다. 암퇘지 사냥에 성공한 잭의 무리는 피의 잔치를 벌이는데 점차 그 사냥의 대상을 동료로 삼기에 이른다.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또는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모르고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알면서 동료를 살해한다. 잭과 그의 사냥꾼들은 새끼를 돌보고 있는 커다란 암퇘지 하나를 잡아 그 머리를 장대에 꽂아 괴물에게 제물로 바쳤는데 괴물의 존재를 조사하던 사이먼마저 죽여 제사를 지낸다. 물론 진실은 감춰진다. 아이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괴물이 두려워 잭의 갱단으로 들어간다. 결국 랠프와 쌍둥이 샘, 그리고 에릭과 피기만 남는다. 섬은 폭력만 난무한다. 잭 일당은 마침내 피기마저 살해한다. 피기는 다른 학생들의 놀림감인 하층 계급 출신에다 뚱보였는데 그의 안경으로 불을 지필 수 있었다. 잭의 갱단은 피기의 안경을 빼앗아 달아나고(그의 안경은 지식인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잭의 부하 로저가 돌을 던져 피기는 언덕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는다. 그리고 샘과 에릭도 강제로 잭의 갱단에 강제로 가담하게 만든다. 폭력이 제어되지 않고 교묘하게 정당화되면서, 그리고 그 폭력 자체가 두려워서 아이들은 잭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잭과 로저는 점점 포악해진다.

쌍둥이가 랠프에게 잭이 그를 죽이려 한다고 알려주고 잭은 도망친다. 잭의 ‘사냥꾼 아이들’은 랠프를 찾으러 섬을 뒤졌고 그가 숨은 곳을 찾아낸 아이들은 그곳에서 랠프를 내몰기 위해 섬 전체에 불을 질렀는데 마침 그 연기를 지나가던 배가 발견한다. 랠프가 죽음의 문턱을 넘으려는 그 순간 영국 군함이 상륙해 아이들을 구조한다.

198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이야기이다. 골딩은 내면화된 문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의 견고성과 효용성을 갖고 있는지 소설에서 의문을 제시한다. 양식과 이성이 폭력과 야만주의 앞에서 무력한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사악함을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행동양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의문과 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악한 수구는 건강한 보수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자신들의 성벽으로 삼는데, 안정된 성장과 점진적 변화를 강조하는 건강한 보수는 분배와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진보와 좌파를 견제하기 위해 탐욕적 수구가 제시하는 ‘이익이라는 당근’을 덥석 문다. 그러면서 이른바 진영의 논리로 교묘히 양극화시킨다. 그 와중에 변절과 배신은 다반사요, 인지부조화는 정당화의 근거로 값싸게 쓰인다. 그렇게 변질된 보수의 가치는 진정한 보수의 가치조차 망가뜨린다.

잭의 폭력과 교묘한 공포는 아이들을 그의 편에 가담하게 했다. 랠프는 마지막에 혼자 남았고, 그마저 살해하기 위해 섬에 불을 지를 때만 해도 그들은 이제 온전히 자신들의 세상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의 연기는 지나가던 배를 불렀다. 다행히 그 덕에 구조됐다. 지금도 막다른 곳에 몰린 소수의 약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불을 지른다. 개인의 사적인 대화까지 들춰보겠다고 불을 지른다. 밝히는 불과 지르는 불은 다르다. 그걸 분별하지 못하니 아무 때나 횃불을 든다. 밝히는 불을 요구하니 지르는 불로 대응한다. 제 허물 감추기 위해서 그 불씨를 피운다. 그 불은 무인도의 아이들을 살려낸 우연의 행운이었지만, 이 불은 집을 태우는 불행의 씨앗이다. 그런데도 신나서 횃불을 들고 설치며 들쑤신다. 아무래도 저러다 집을 태우지 싶다.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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