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호명을 받고 등장한 '근대의 아이콘' 때로는 저항의 주체로, 때로는 체제의 꼭두각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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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호명을 받고 등장한 '근대의 아이콘' 때로는 저항의 주체로, 때로는 체제의 꼭두각시로

입력
2014.10.1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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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훈 지음

돌베개 발행ㆍ332쪽ㆍ1만8,000원

2014년 한국에서 청년의 이미지는 그리 밝지 않다. 현실이 어두운 탓이 크다. 당장 청년 실업이 심각하다. 미래를 꿈꾸거나 사회를 걱정하는 것보다 취직이 급하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학생운동은 퇴조한 지 오래다. 저항보다 적응에, 비판보다 이른바 ‘힐링’에 몰두하는 요즘 청년들을 두고 기성 세대는 청년다운 패기가 없다고 한탄한다. 한편으로는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책이 쏟아진다. 청춘은 무슨, 아프면 환자다. 그것도 제 잘못으로 병에 걸린 게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 다치고 아픈 청년들에게 참고 견디며 노력하면 좋아질 거라는 조언은 무책임하다.

시계를 한참 뒤로 돌려 80년 전으로 가보자.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청년 환자들이 있었다.

“작금의 청년 조선은 몹시도 헐떡이고 있다. … 대담히 ‘청년 조선’의 병원을 진단하노니 실진=희망을 잃은 데 있다. … 그러면 현명하신 이 사회의 선구, 이 사회의 지도자, 이 사회의 명의들이시여! 당신들의 하실 일은 무엇입니까.”

1935년 잡지 ‘학등’ 11월호에 실린 이 글은 식민지 조선에서 길을 잃고 마음이 병든 청년, 그리하여 사회를 이끌어가기는커녕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가 되어버린 청년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 조선은 좌우를 막론하고 민족운동이 침체한 가운데 청년 실업이 만연했다. 진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당시 청년들을 부추긴 것은 입신출세를 추구하는 속류영웅론과 파시스트 청년론이다. “청년 학생은 영웅이 아니 되면 아니 된다“고 한 이광수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청년들에게 대중을 이끄는 지도자가 될 것을 당부하며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바람직한 모델로 칭송했다. 이광수의 영웅론과 지도자론은 널리 퍼졌다.

다시 시계를 돌려 지금 여기로 오면, 이른바 ‘일베충’으로 대표되는 극우 파시스트적 청년 군상을 마주친다. 심지어 이승만 정권 때 빨갱이를 때려잡겠다며 테러를 일삼은 서북청년단 재건을 외치는, 청년 아닌 청년들의 집단도 등장했다. 1930년대 조선과 묘하게 겹치는 풍경 앞에서 일순 아연해진다. 세상이 거꾸로 도는 것일까.

앞에 인용한 글은 신간 ‘청년아 청년아 우리 청년아’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이기훈 목포대 사학과 교수가 쓴 이 책은 ‘청년’이라는 개념이 한국 사회에 언제 어떻게 등장해서 어떻게 변해왔는지 추적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를 읽어낸다. 다루는 시기는 한국 사회가 근대로 이행하는 19세기 말부터 1970년대까지다. 개화기, 식민 지배, 해방과 전쟁, 혁명과 독재를 차례로 거치는 동안, 역사가 청년이라는 주체에 어떤 위상과 역할을 부여했으며 그 위상과 역할이 시기에 따라 어떻게 변해갔는지 파헤친다. 역사는 왜 청년을 불러냈으며 청년은 어떻게 역사를 만들었는지 신문, 잡지, 책 등 간행물을 주요 자료로 활용해 꼼꼼히 분석했다.

요즘 사용하는 의미의 ‘청년’은 1890년대 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근대적 경쟁을 주도할 새로운 젊은이를 의미하는 말로 청년이 등장한 것이다. 그 전에도 청년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젊은 사람이라는 세대 개념은 아니고 젊은 시절을 가리켰다. 청년 대신 ‘소년’이나 ‘자제’라는 말을 주로 썼고 그 속에는 연장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미숙한 존재라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청년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는 청년상을 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월호특별법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단식 농성 중인 광화문광장에서 일간베스트 회원과 자유대학생연합 소속 대학생들은 식사 퍼포먼스를 벌였다. 뉴시스

저자가 추적한 경로를 따라가면 청년이라는 개념이 근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반영하며 전개됐음을 알 수 있다. 1900년대 애국계몽기의 청년은 문명개화론과 결합해 이전의 봉건 체제를 극복할 주체로 부름을 받는다.

일본 유학생들이 민족을 선도하는 청년으로 등장한 1910년대를 지나 1920년대에 오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에서 청년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다. 민족주의 진영은 근대화, 문명화를 이끄는 주체이자 민족을 통합하는 상징으로 청년을 봤다. 사회주의 진영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위로 청년을 주목했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진취적인 주체로 호명됐던 청년의 위상이 고꾸라진 것은 1930년대에 와서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강고해지면서 무기력한 청년에서 체제 친화형 청년, 파시스트 청년으로 계속 추락하다가 전시체제로 전환한 193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모델이 청년상을 장악한다. 일제는 착실한 ‘모범청년’, 권력과 지역사회를 매개하는 ‘중견청년’을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하며 청년을 통제했다. 청년은 침략 전쟁의 첨병이 됐다.

해방이 됐다. 좌우 대립이 극에 달한 와중에 등장한 극우 청년단은 한국전쟁을 거쳐 1950년대에 이르는 동안 폭력의 대명사였다.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 서북청년단이 자행한 제주 4ㆍ3사건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 후반 이래 국가 권력에 전략적으로 이용당하는 수동성을 면치 못하던 청년의 위상을 역전시킨 사건은 1960년 4ㆍ19혁명이다. 혁명을 수습하는 과정에 대학생이 새로운 세대 주체로 부각되면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청년 담론의 중심에 선다. 1970년대 청년은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상징되는 청년문화 논쟁과, 유신 체제에 저항하는 학생운동으로 시대를 관통한다.

책은 여기서 끝난다. 청년은 역사를 이끄는 전위였던 때도 있고 체제의 꼭두각시였던 때도 있다. 지금 청년은 어떤 모습인가. 책을 덮으면서 떠오르는 이 질문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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