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불 붙인 개헌논의가 벌써 변질하고 있다. 김 대표는 그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이원집정부제에 대한 개인적 선호까지 밝혔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뜻과 정면 배치된다는 보도와 야당의 환영을 대하고는 하루 만에 그는 꼬리를 말았다. 전혀 의지를 담지 않은 관측일 뿐이고,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누가 됐다는 이유를 들어 “미안하다”고 사과하기까지 했다. 야당은 즉각 그의 태도 번복을 비난하는 동시에 여당 대표조차 청와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부각하고 나섰다.
모처럼의 개헌논의가 또 이런 식으로 흘러서야 앞길이 뻔하다. 여러 차례 보았듯, 여야의 이해상충에 따른 정치공방만 거듭되다가 다시 가라앉기 십상이다. 그것이 다시 떠오르게 하려면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어렵게 맞은 개헌논의의 호기를 날리고, 국민의 부정적 인상만 짙게 했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과(過)는 ‘불찰’ 사과로 씻기 어렵다. 그의 입에서 비롯한 이번 소동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틀에 박힌 것이었다. 개헌논의를 정치적 이해득실 기준으로만 바라보는, 과거의 잘못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는 진정한 개헌논의를 시작하기도 어렵고, 시작해 봐야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어렵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 대표의 발언을 크게 환영했다. 헌법을 바꿔 권력구조를 비롯한 정치ㆍ사회 틀을 새로 짜자는 데 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박 대통령을 견제하고 여당 내부의 대립을 부추길 수 있다. 개헌논의 과정에서 수없이 언급될 ‘제왕적 대통령제’ 담론을 통해 현 정부의 ‘독선적 국정 운영’을 비판할 기회이기도 하다.
반면 청와대와 여당은 지금 같은 개헌논의 방식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거부감이야 권력 핵심의 본능이다. 개헌논의가 본격화하고, 새로운 권력구조 등에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면 현직 대통령의 힘은 빠지게 마련이다. 집권 후반기면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권력누수(레임덕)도 앞당겨진다. 그것이 개헌논의에 대한 분명한 반대 의사로 나타났다. 이런 대통령의 자세 때문에 여당은 곤혹스럽다. 김 대표가 국민들 귀에 어색한 “대통령께 미안하다”고 발을 뺀 데서 보듯, 개헌논의는 당내의 잠재적 계파갈등을 폭발시킬 복병이다. 막상 야당의 공세를 마주한 순간, 서둘러 당내 갈등을 덮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개헌논의를 되살리려면 여야의 ‘이해 유보’가 필요하다. 우선은 청와대부터 개헌논의가 곧바로 개헌이 아니라는 점에서 권력누수 불안을 희석해야 한다. 여야 의원 각자의 당론 불구속 결단도 요구된다. 현 정부의 임기 말이 개헌의 호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면, 정기국회가 끝나는 대로 개헌논의를 시작해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눈앞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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