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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강가에 섰든 누구나 함께 시대정신을 노래한 시간을 추억하며

입력
2014.10.1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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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지음ㆍ창비 발행

입시철 지리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를 하던 중 ‘신동엽의 서사시 백마강’을 슬쩍 흘렸다. 간신히 귀에 주어 담아 학교 주변 서점을 뒤졌건만 신동엽의 백마강이란 시집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백마강이 금강의 잘못이란 사실을 대학 선배 자취방에 꽂힌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읽고 알았다. 왜 금강이 백마강이 됐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시인의 직설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성향 때문일까. 시집을 접하기까지 겪은 어려운 인연 때문일까. 1980년대 중후반 본격적인 참여시인들이 나오기 전 누구라도 그랬듯이 신동엽의 시에 끌려갔고, 거기서 떠나지 못했다. 30년 전 그때 만난 초판 본 시집은 나의 책꽂이에 아직 있다. 그의 시들은 지금도 읽는 이들에게 찬 얼음물을 뒤집어 씌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같은 느낌을 준다.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 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 아침 저녁 /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 볼 수 있는 사람은 / 외경(畏敬)을 알리라.”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그의 시 전집 출간이 어려워지자 그 일부를 골라 1979년 창작과비평사가 출간한 것이다. 거기에도 ‘금강’은 실리지 못했으니 1970년대 청년이었을 지리 선생님이 금강과 백마강을 혼동할 법했다. 시집 제목이 된 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4ㆍ19를 온몸으로 겪은 시인이 혁명 7년 뒤의 낙담을 섞어 “누가 구름 한 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며 읊조린 시다. 1967년이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윤보선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한 후이니 당시 시인의 감정을 유추해볼 수 있다. 갑오농민전쟁을 4,800행에 그려낸 장편 서사시 ‘금강’도 그때 나왔다. 4월 혁명을 노래한 시로 더 알려진 ‘껍데기는 가라’는 2년을 더 기다려 발표된다.

시인은 3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39세의 아까운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했다. 강 유역 주민들에게 많은 간디스토마를 치유하지 못한 뒤였다. 사진 속 가녀린 인상에도 시 속의 그는 뜨거운 피를 가졌다.

다른 시인들이 시보다는 기행으로 기억되던 시절 신동엽은 동학, 4ㆍ19혁명 같은 역사를 시 속으로 끌어내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데워 놓았다. 그런 만큼 평단에서는 관념의 과잉이나 역사적 의식의 깊이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하지만 역사에서 인식의 뿌리를 찾아 치열하게 노래한 그의 시는 민주ㆍ민중문학의 전망을 여는 소리이기도 했다.

시집 출판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시대가 가면서 그의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시비 2개는 고향 부여를 지키고 있다. 부인 인병선씨가 관장으로 있는 서울 명륜동의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도 그의 흔적을 조금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 최대 포털 네이버에서 시인 신동엽이 개그맨이자 MC인 신동엽과 동명이인 정도로 대우받는 걸 보면, 지금은 다른 이유로 금강과 백마강을 구분하지 않은 시절로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시에서 말한 하늘은 무엇이고 누가 하늘을 봤던 것일까. 그는 ‘금강’에서 답했다. “우리들은 하늘을 봤다. 1960년 4월 역사로 짓눌던, 검은 구름장을 찢고 영원의 얼굴을 보았다.”

이태규 기획취재부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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