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바우만ㆍ카를로 보르도니 지음ㆍ안규남 옮김
동녘 발행ㆍ298쪽ㆍ1만6,000원
"권력은 경제에 빼앗기고 국가 책임이던 대부분을 사적 부문에 넘겨
아무런 책임 지지 않고 통치만...이상한 지배형태 출현"
6개월 전 우리는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는 대한민국을 목도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 안전을 위한 규제 강화보다 경기 진작을 위한 규제 완화가 상위였다는 절망, 내가 살고 있는 국가가 나의 국가가 아닌 ‘국가를 위한 국가’였다는 허무가 그 배에 실려 침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위기의 국가’는 마치 이에 답이라도 하듯 국가의 실체를 짚어보는 책이다. 탈근대 사상가인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이탈리아 사회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를로 보르도니의 대담으로 이뤄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날 국가는 개별 국가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라는 게 두 사람의 진단이다.
바우만은 국가의 구조 능력을 떠받치는 두 요소를 권력과 정치로 꼽는다. 하지만 오늘날 국가의 수중에는 정치만 있을 뿐 권력은 그 밖에 있다는 것이다. “권력은 처리할 능력이고 정치는 판단하는 능력인데 국가는 권력의 상당부분을 계속해 빼앗겨 왔다. 현재 국가의 위기는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국가에게서 손과 발을 빼앗아 간 상위의 권력은 바로 경제다. 더 정확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다. 보르도니는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면서 정치는 약해졌고 초국적인 경제 권력에 의존하게 됐다”며 “무조건 자유주의적이거나 신자유주의적인 원리들을 따르는 것만이 파멸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양 여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역시 대선 때 유권자들을 현혹했던 복지공약과 경제민주화는 실체를 찾아볼 길이 없어졌다. 그 자리에는 대신 교육과 의료 부문의 영리화 정책이 들어섰다. 보르도니는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책임이던 것들을 대부분 사적 부문에 넘겨버린다”며 “그 결과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완전히 새롭고 이상한 지배 형태인 ‘국가 없는 국가’가 출현한다”고 꼬집는다.
이러한 국가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쇠퇴로 이어진다. ‘민주’보다 ‘자본’이 우세해진 불균형이 낳은 결과다. 박근혜 정부가 부르짖는 ‘규제완화’가 가져올 미래가 장밋빛이 아닌 이유다. 보르도니는 “탈규제는 신자유주의, 서비스의 민영화, 복지국가의 급속한 축소로 나가는 첫걸음”이라며 “국가의 중요한 통치 행위를 포기하고 시민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한다.
경제 권력에 지배 받게 된 국가가, 그렇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마저 포기한 건 아니다. 게다가 기술의 발달은 과거 전통적 방식의 권력 행사보다 더 쉽고 부드러운 방법으로 통제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바우만은 “오늘날 우리는 비밀과 친교의 성소인 고해성사실마다 확성기와 연결된 마이크가 설치돼있는 사회에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이 마이크는 정보 처리 장치에 의해 실시간 혹은 나중에 이용될 수 있도록 고백을 저장하는 서버와 연결돼있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카카오톡 감시’ 논란과 일맥상통하는 통찰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서구의 국가들의 사례를 기반으로 이어지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문화)는 “한국이 모델로 삼고 달려온 서구의 근대성 역시 우리가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당대 최고라고 할만한 두 지식인의 생각들은 시민사회의 위기, 정치에 대한 불신 등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한 신선한 관점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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