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불온한 여행기...오랑캐땅에서 실학의 씨앗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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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불온한 여행기...오랑캐땅에서 실학의 씨앗을 품다

입력
2014.10.1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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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지음

한국고전번역원 발행ㆍ264쪽ㆍ1만2,000원

홍대용의 청나라 여행과 파장 분석

연경에서 서구 문물 만난 충격... 사후에도 조정의 논쟁으로 이어져

홍대용이 북경에서 사귄 중국 선비 엄성이 그린 홍대용의 초상. 그는 홍대용이 귀국한 뒤 내내 그리워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대용은 서른 다섯 때인 1765년 겨울 사신단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수도 연경(지금의 북경)에 갔다. 서울을 떠난 지 근 두 달 만인 12월 27일 연경에 도착, 이듬해 1월과 2월 두 달간 머물다 귀국했다. 홍대용은 이 때의 경험을 한문으로 쓴 ‘연기’와 한글로 쓴 ‘을병연행록’으로 남겼다.

홍대용의 여행기는 조선 지식인 사회에 파란을 일으켰다. 북경에서 중국 선비들을 사귄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청나라의 발전상을 긍정적으로 평한 것도 문제가 됐다. 청을 상종 못할 오랑캐로 여기던 시절이니 그럴 만했다. 이 일로 홍대용은 절친 김종후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논쟁은 승패가 갈리지 않고 끝났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여행기가 조선을 뒤흔든 문제작이라는 사실이다. 홍대용은 청의 번영과 안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보수세력은 못마땅해했지만, 이를 접한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 청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싹텄다. 박지원의 북경 여행기 ‘열하일기’가 선풍적 인기를 끈 것도 홍대용의 전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문학자인 강명관 부산대 교수가 쓴 ‘홍대용과 1766년’은 홍대용의 여행기가 왜 논란거리가 됐고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꼼꼼히 살펴 짚어낸다. 홍대용이 어떤 인물이고, 북경에서 무엇을 봤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따라가는 동안 뚜렷이 느껴지는 것은 그가 받은 문화 충격이다. 청의 흥성한 문물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북경 천주당에서 시계, 망원경 등 서양 문물을 보고 그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중국이라는 창을 통해 비로소 세계를 접하면서 홍대용의 사상이 성장한다.

쉽게 변한 건 아니다. 그는 북경에서 주자학을 비판하는 당대 지식의 최전선을 접했지만 귀국 후에도 주자학을 굳게 신봉했다. 명나라에 의리를 지키며 청을 오랑캐로 보는 것도 여전했다. 생각이 바뀐 것은 김종후와 논쟁을 벌이면서부터다. 이후 홍대용은 중화와 오랑캐는 본디 구분이 없으며 각 문명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인식에 이른다.

저자는 조선 후기에 수많은 연행이 있었지만 홍대용의 연행만큼 큰 충격을 던진 경우는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홍대용이 죽고 3년 뒤 조선 조정에서 벌어진 논쟁이 그 여파를 보여준다. 1786년 1월 22일 정조가 주재한 조회에서 보수와 개혁의 두 흐름이 충돌했다. 정조는 보수 편을 들었다. 북경에서 사오는 책들이 불경하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서적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사신단이 중국인과 만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필담 금지, 귀국 후 선물 주고 받기 금지 등 8개항의 금지령이 떨어졌다. 그날 조회에서 박제가는 중국과 교역하고 서양 선교사를 초빙해 서양의 선진 과학기술을 배울 것을 주장했지만, 씨도 안 먹혔다.

홍대용은 북경에서 중국 선비 엄성, 반정균, 육비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눴다. 몇 번 못 봤지만 눈물로 이별할 만큼 각별했고 귀국 후에도 편지와 선물이 오갔다. 국경을 초월한 홍대용의 사귐 이후 북경에 가는 이마다 중국 지식인과 교유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고, 홍대용의 북경 인맥이 다리가 됐다. 이는 전통시대 한중 지식인의 교류사에 특별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지금이야 흔한 게 해외여행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중국에 가는 사신이나 일본에 가는 통신사만 할 수 있었다. 저자는 세계화 시대인 오늘, 홍대용이 그랬듯이 인종과 언어, 국가를 넘어 세계인과 대화와 우정을 나누며 보고 배우자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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