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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되고 싶은 여자, 타인의 상처를 훔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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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되고 싶은 여자, 타인의 상처를 훔치는 여자

입력
2014.10.1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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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상처에 어느 정도로 공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종종 개인의 인격을 가늠하는 척도로 쓰인다. 깊은 공감과 그에 걸맞은 행동은 바람직한 것, 외면이나 말뿐인 위로는 부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깊은 공감’을 시도해본 이라면 누구나 알게 된다. 깊이의 정도를 결정하는 순간 거기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윤이형의 ‘러브 레플리카’에는 이연과 경, 두 여자가 등장한다. 이연은 거식증 환자다. 목표체중인 35㎏에 도달하기 위해 그가 자신에게 허락한 것은 물과 커피 정도. 어쩌다 배고픔을 못 이기고 음식을 먹는 날엔 어김없이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게워낸다. “배가 불러 저런다”고 힐난하는 이들에게 대응할 논리도 갖고 있다. 너희가 나를 이렇게 만들지 않았느냐고, “살만 빼면 사람 같아 보일 것”이라는 말을 십 수년간 들어온 사람이 다른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이연은 자신과 같은 병원에서 정신 상담을 받는 경을 우연히 만난다. 경은 정신과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다. 토하고 싶은 충동과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 속에서 헐떡이던 이연이 낯 모르는 경에게 말을 걸던 날, 경은 밤 늦게까지 그의 말을 들어준다. 토하듯이 뱉어내던 자신의 추한 내면이 싫지 않았느냐고 묻는 이연에게 경은 답한다. “너 같으면 그러겠니? 사람이 토하고 있는데 어떻게 중간에 끊으라고 해. 그게 의지로 끊어져?”

경을 언니처럼 따르게 된 이연이 들은 것은, 과거 경이 자신에게 접근했던 외국인 불법 체류자가 무서워 도망쳤던 일, 나중에 뉴스에 나온 자살한 외국인 노동자의 거주지가 하필 자신의 동네임을 알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 일이다. 이연은 경이 고수하고 있는 순수한 양심과 고매한 인격과 비교해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한다. 동경하는 마음으로 검색한 ‘최경’이라는 이름을 통해 그가 불법 체류자들을 위한 인권운동에 뛰어 들었으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동경은 존경으로 바뀐다.

그런데 이상하다. 언젠가부터 경이 섭식장애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 가끔 먹을 수가 없잖아.” 당연한 듯 꺼내는 경의 고민은 이연 자신의 것과 일치한다. 왜 그가 내 얘기를 자기 것처럼 하고 있을까. 어느새 거식증 환자처럼 말하는 경을 두고 이연은 최경이 속해 있다는 인권단체를 찾아간다. 직원이 연결해준 전화 속의 최경은 이연도, 자살했다는 외국인 노동자도 모른다고 말한다. “병원…? 병원에 누구랑 같이 다닌 적이 없는데요.” “없으시다고요?” “네, 누구신지 저는 잘 모르겠는데.”

경은 누구일까. 경은 최경의 삶을 훔친 것일까. 그리고 이번에는 이연의 삶을 훔치려고 한 것일까. 허위로 과거를 꾸며낼 심산이었다면 왜 높은 학벌이나 재산이 아닌 편견과 섭식장애 같은 더러운 것들을 끌어 썼을까. 그는 왜 타인의 오점을 훔치는가.

‘러브 레플리카’는 거식증에 걸린 여자와 허언 증세를 보이는 여자의 짧은 만남이 만들어내는 긴 질문과도 같은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자신을 받아들일 수 없어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의 삶에 자신을 고정시키려고 하는 이의 이야기”라고 풀이했다. 그는 “타인의 상처에 깊이 공감한 나머지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책임지며 복구하려 드는 것이 경의 증세이자 윤리적 능력”이라며 “과도할 정도의 도덕성이 허언증으로 발현되는 설정을 통해,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 소설은 묻고 있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윤이형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돼 등단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 ‘큰 늑대 파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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