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단체 한국인 비하 발언 목격 후...日3위 로펌 그만두고 인권변호사 길
유엔 인종차별위 권고 결정 이끌기도..."한국인 관심으로 日정부 압박해야"

지난달 23일 일본 도처에서는 ‘일한 외교관계 단절’이라는 깃발을 든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의 집회가 열렸다.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등 재일 한국인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 진행된 집회에는 ‘한국인을 국외 추방하라’, ‘한국인은 범죄자집단이다’는 증오 섞인 피켓이 등장했다. 한 일본 여학생은 집회에서 “한국인을 죽이고 싶다. 대학살을 당하기 전에 당신들 나라로 돌아가라”는 섬뜩한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극우단체 회원들의 환호성이 이어진 이 집회는 가두시위로까지 이어졌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런 일본 극우단체의 집회를 막기 위해 활동 중인 김창호(30) 변호사는 16일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한국인에 대한 인권비하 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일본 현지에서 벌어지는 과격한 헤이트 스피치 집회를 목격한 뒤 일본 내 3위 로펌인 ‘모리하마다’를 박차고 나와 인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 한국 국적, 조선 국적, 일본 국적 등 여권 상의 국적은 달라도 한국인의 피를 갖고 있는 변호사 117명과 함께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ZAK)에서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법률적 대응에 힘을 쏟고 있다.
김 변호사와 LAZAK의 지속적인 활동에 힘입어 지난 8월에는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로부터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에 대처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 결정을 이끌어 냈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일본 중앙정부가 극우단체의 헤이트 스피치를 규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재일 한국인 고령자 및 장애인을 국민연금 제도에서 배제하는 일본 정부의 정책 등에 대해서도 수정을 권고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에 김 변호사와 LAZAK는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헤이트 스피치 프로젝트 팀’과 야당인 민주당의 ‘인종차별철폐기본법을 추구하는 의원연맹’과 함께 차별금지법 입법에 나서는 등 일본 정치권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모국인 한국에서 헤이트 스피치 사건에 관심을 갖고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의 관심이 일본 정부에 정치적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는 50만명 이상의 한국인 중 약 40만명은 일제시대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자손”이라며 “최근 헤이트 스피치의 증가로 재일 한국인, 특히 재일 한국인 아동 대부분이 정신적 충격을 받고 심지어 신체적 위협까지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민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중의원과 참의원의 과반수를 장악하고 있는 자민당의 보수우익 성향을 고려하면 입법과정이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한국민들이 일본에서 힘들어 하는 동포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준다면 차별금지법 입법 운동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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