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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씨앗을 사고 팔다니!

입력
2014.10.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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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도의 과학철학자이자 생태운동가인 반다나 시바에 관한 영화를 봤다.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가 만든 다큐멘터리 ‘씨앗을 껴안다’였다. 캐나다에서 양자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후 고향 데라둔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국적 기업에 의한 생물 자원의 독점을 반대하고 전통 농업을 지키기 위한 종자 비축 운동을 이끌고 있다.

영화에 나온 그녀의 어린 시절 일화를 소개한다. 간디의 추종자였던 시바의 어머니는 물레를 돌려 만든 옷만을 입혔다. 시바가 6살 때 합성섬유로 만든 옷이 크게 유행했다.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을 물었을 때 그녀는 친구가 입고 있는 합성 섬유 코트를 사달라고 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간디 경제학 첫 레슨이 시작되었다. “너에게 그런 코트를 사줄 수도 있어. 하지만 기억하렴. 코트값은 부자들의 고급차로 둔갑한다는 걸. 손으로 짠 옷을 네가 계속 입는다면 어딘가의 가난한 어머니와 아이의 밥이 된단다. 자, 네가 결정하렴.” 그때 이후 시바는 평생 손으로 짠 옷만 입어왔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의 어머니를 비롯한 여성들의 지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바가 환경운동에 눈을 뜬 계기도 고향마을 여성들의 나무 끌어안기(칩코 안돌란) 운동 때문이었다. 정부의 삼림 벌목에 반대한 마을 여성들은 벌목업자와 싸우는 게 아니라 숲으로 달려가 나무 한그루 한그루를 끌어안아 버렸다. 시바에 따르면 시골에 남아 생활을 도맡은 여성들은 생명을 보살피는 법을 알고 있었고, 숲과 대지와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마을 여성들은 나무를 끌어안음으로써 “최고의 저항은 깊은 애정에서 우러나온다”는 간디의 말을 온 몸으로 증명했다. 그 후 시바 또한 사랑하는 것 모두를 부둥켜안기로 했고, 그것이 그녀의 저항의 방식이 되었다. ‘씨앗을 껴안다’라는 영화의 제목처럼, 그녀는 씨앗을 끌어안고 지난 20년을 저항해왔다. 인류의 지혜가 축적된 생명의 근원인 씨앗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래서 그녀의 농장 나브다냐에서는 농부들에게 유기농법을 가르치고, 조건 없이 씨앗을 빌려주고 씨앗으로 되갚게 한다. 그러는 사이 그녀는 몬산토, 듀폰, 카길 같은 거대 기업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세계무역기구의 “무역관련 지적 재산권 협정”에 따라 만들어진 지금의 종자 특허법은 종자의 비축과 공유를 범죄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씨앗은 자연에서 거저 얻던 것이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돈을 주고 씨앗을 산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그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건 다국적기업들이다. 모든 농민이 공짜로 얻던 씨앗을 팔기 위해 그들은 씨앗에 유전자변형을 일으켜 새로운 작물인양 만들어내고, 특허권을 얻는다. 그들의 독점이 진행될수록 농산물 재배의 비용과 위험이 증대되고 농가는 부채를 떠안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항생물질에 내성을 지닌 유전자가 종자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몸에 어떤 해악을 끼칠지 모르는 종자를 돈을 주고 사서 키우는 모순투성이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옥상에서 손바닥만한 텃밭을 가꾸며 ‘농부 코스프레’ 중인 나도 ‘씨앗은 공짜’라는 자연의 은덕을 종종 입는다. 지난 8월 말, 아이슬란드를 다녀오느라 옥상의 농작물을 다 뽑아놓고 떠났다.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텃밭 곳곳에 루꼴라와 바질이 번성하고 있었다. 봄에 심었던 것들이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거기서 떨어진 씨가 절로 싹을 틔운 거였다. 나는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은 채 흙과 태양이 키워준 루꼴라와 바질을 매일 얻어먹는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나눈다. 나브다냐 농장처럼 우리도 씨앗을 무료로 나누고 교환하는 운동을 펼쳐 가면 어떨까. 이제 우리도 돈으로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끌어안고 저항하자.

3만 원 이상 기부금을 내는 소규모 그룹이라면 반다나 시바의 영화 ‘씨앗을 껴안다’를 1박 2일간 공유할 수 있다. 문의는 여성환경연대((02)722-7944)로.

김남희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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