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종로 탑골공원에서 첫 집회
어머니들 연로해 참가자 줄었어도 어제 시민 400여명 참여 뜨거운 관심
"행인들의 욕설과 방해 심각하지만 국보법 등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남은 양심수가 모두 석방되고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날까지 우리들의 목요집회는 계속될 겁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목요집회가 16일로 1,000회를 맞았다. 햇수로는 21년째다. 민가협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도 양심수를 석방하지 않자 1993년 9월 23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 앞에서 첫 목요집회를 열었다. 민가협은 민청학련, 재일교포 간첩단, 미국 문화원 사건 등 70~80년대 독재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모여 85년 12월 출범한 단체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김정숙(76)씨는 “1회 집회 때만 해도 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000번을 나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하며 가방 속에서 ‘민가협’이라는 노란색 수가 놓인 보라색 손수건을 꺼내 머리에 썼다. 민가협 회원들의 상징인 보라색은 ‘고난 속에서 희망을 갖자’는 뜻을 갖고 있다.
김씨는 임종석(48)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어머니다. 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이었던 임 부시장이 서울 여의도 농민집회에서 격려사를 한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자 김씨는 민가협을 처음 찾았다. 김씨는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앞에서, 학생들이 갇혀 있는 교도소 앞에서 끊임없이 집회를 벌였다”며 “안기부 앞에서 집회를 할 때에는 군홧발에 머리를 차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아들이 95년 석방된 뒤에도 목요집회에 빠짐 없이 참석하고 있다. 김씨는 “전에는 내 아들만 건강하고 좋은 직장 다니며 살기 바랐는데, 집회에 나오면서 내 자식, 네 자식 가리지 않고 모두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들이 96년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배가 됐던 조순덕(65) 상임대표 역시 “아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아직 내 자식 같은 양심수들이 남아 있어 목요집회에 계속 나오고 있다”고 거들었다. 민가협은 김무석씨 등 병역거부자 8명, 국정원 내란음모 관련자 7명 등 39명이 아직 양심수로 형을 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집회가 21년째 이어지면서 어머니들의 기력도 많이 쇠해졌다. 조 대표는 “초기에 집회에 나오시던 어머니들은 벌써 80대에 접어들었고 두 분은 병원에 계신다”며 안타까워했다. 초반 100여명에 달했던 참가자도 최근 들어서는 20명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행인들이 집회에 적대감을 보이는 경우가 잦아 회원들을 더 힘들게 한다. 김씨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집회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더니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욕설과 집회를 방해하는 정도가 심각할 지경”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집회 전에도 “국가보안법 철폐는 말도 안 된다”며 고함을 지르는 시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날 집회에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시민 등 400여명이 참여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1,000회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른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민가협 어머니들께서 넣어주신 영치금과 사식으로 감옥에서 버틸 수 있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비전향 장기수였던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민가협 회의에서는 집회 준비뿐 아니라 김장을 담근 이야기같이 소소한 삶의 이야기도 오간다”며 “그런 따뜻한 마음이 민가협을 이끌어온 힘”이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참가자들이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우리에게는 수십년간 피로 쓴 민주주의의 발전 역사가 있지만, 그럼에도 민주ㆍ인권 세상으로 가려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목요집회는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다.”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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