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 서태지가 오는 20일 컴백한다. 1996년 그룹 해체 후 실험적인 록 음악에 치중하던 이전과 달리, 감성적인 곡도 선보일 예정이라 대중의 기대가 높다. 서태지의 귀환은 자연스럽게 '서태지와 아이들'을 회상케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서태지의 데뷔부터 은퇴 후 행보까지 되짚어 보고, 21세기에도 여전히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가 적합한지 고민하는 시간도 가져보겠다. 시리즈는 총 3회에 걸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문화대통령' 그가 돌아온다] ①서태지와 아이들, 데뷔부터 은퇴까지 ▶ 기사보기

"팬들의 사랑이 가장 넘치는 순간 은퇴하자고 멤버들과 약속했다"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은 한 줄의 이별사만 남긴 채 떠난다. 팬들의 간절한 소망도 이들을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은퇴 기자회견을 마친 세 사람은 곧바로 헬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훌쩍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함께 먹은 이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길로 떠났다.
1. 서태지, 자신의 음악적 모태로 돌아가다
서태지는 이후 음악활동을 하지 않은 채 미국에서 1년간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은퇴 2년 뒤, 1998년 솔로음반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콘서트 등 특별한 활동 없이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다.
2000년 8월 귀국한 서태지는 6집 앨범 '울트라맨이야'를 발표한다.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모태인 록 장르를 본격적으로 선보였다.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는 국내에서 낯선 뉴 메탈 스타일로 매니아층을 형성했다. 이후 서태지는 2009년 8집 앨범까지 실험적인 록 음악으로 자신 만의 장르를 구축해나간다. 무엇보다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모습은 그를 더욱 신비한 뮤지션으로 각인시켰다.
그러던 중 서태지에게 전혀 뜻밖의 위기가 찾아온다. 2011년 배우 이지아와의 비밀 결혼·이혼 소식이 세간에 알려진 것. 이혼 사유 등에 대해 이지아와 입장이 판이해 진실공방이 치열했다. 이에 대해 서태지는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은퇴 당시도 어렸지만 그때도 너무 어렸다. 남녀 사이라는 게 그렇듯 사실 생각대로 되지 않더라. 내가 남자니까 다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2013년 배우 이은성과 재혼한 그는 올해 아이를 출산하면서 단란한 가정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컴백을 앞두고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적극적인 소통 행보도 보여주고 있다.
달라진 서태지의 모습은 그의 음악에서도 드러난다. 미리 공개한 이번 앨범 수록곡 '소격동'은 이전보다 힘을 많이 뺀 느낌이다. 타이틀곡 '크리스말로윈' 역시 서태지 본연의 실험정신을 살리면서도 선명한 후렴구 멜로디로 대중성을 높였다. 그 어느 때보다 서태지 앨범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높은 이유다.
2. 매번 적중하는 '기획력'…양현석, YG의 '큰 손' 되다
서태지가 은퇴 후에도 자신의 음악에 몰두했다면, 양현석은 다른 길을 선택한다. 양현석에게는 타고난 눈썰미와 기획력, 리더십이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에도 양현석의 기획력이 돋보였다. '난 알아요'는 당초 서태지의 솔로 데뷔곡 이었으나, 서태지가 양현석의 조언을 받아들여 팀의 댄스곡으로 바꾸면서 불멸의 히트곡으로 거듭났다.
은퇴 후 양현석은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을 맘껏 발휘한다. 1998년 양군기획을 설립하고 제작자로 나선다. 양군기획은 2년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YG엔터테인먼트'로 개명한 후 국내 3대 기획사로 성장한다. 양현석의 지원 아래 지누션, 원타임, 세븐, 렉시, 빅뱅, 2NE1 등 이름만 들어도 두근거리는 뮤지션의 탄생이 줄을 잇는다. 특히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적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올해 연예계 최고 주식부자로 등극했다.
최근 가요계는 '양현석 대 서태지'의 대결 구도에 주목하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가수 악동뮤지션, 에픽하이와 서태지의 컴백 시기가 공교롭게도 맞물렸기 때문. 이와 같은 매치업 주장에 양현석은 "섭섭하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에게 비난 받는 것이 속상하다"며 "이미 계획됐던 앨범을 발표하는 것일 뿐이다. 정말 '웃픈' 상황이 아니냐"고 심경을 토로했다.
3. 이주노, 한때 60억원 '빚의 수렁'에… 인생 굴곡사
이주노는 은퇴 직후 5인조 혼성그룹 영턱스클럽을 데뷔시키며 제작자로 변신한다. 2000년에는 솔로 앨범 '바이오닉 주노'를 발표하며 홀로서기에도 도전한다. 뿐만 아니라 2006년 부산에 ‘클럽주노’라는 대형 클럽을 오픈하고, 힙합패션브랜드 ‘댄스머신’을 런칭하는 등 사업 확장에도 골몰한다. 그는 3명의 멤버 중 가장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을 해나간다.
과유불급이었을까. 이주노는 앨범 부진과 사업실패가 겹치면서 무려 60억원의 빚을 지고 만다. 최고의 스타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멤버들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이후 그는 악착같이 돈을 모아 2009년 빚을 모두 청산했다. 그 다음해 댄스아카데미 '디엠스쿨'을 설립하고, 경기도 평택의 한 국제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이주노는 2012년 23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해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천안에서 돌잔치 전문 사업을 시작하며 사업가로도 활동 중이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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