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분식집에서 참치김밥에 라볶이를 먹는데 그 애가 떠올랐다. 처음 만난 날, 그 애는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참치김밥과 라볶이라고 말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저녁으로 으레 피자나 파스타, 스테이크를 먹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따라 웃었다. 언젠가부터 참치김밥과 라볶이를 먹을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 애가 떠오른다. 분식집에 들어가서 뭐 먹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참치김밥을 시키기도 한다. 다 먹을 수 없을 걸 알면서 라볶이도 덩달아 시킨다. “참치김밥은 라볶이랑 함께 먹어야 더 맛있어.” 그 애의 말이 떠올라 싱겁게 웃기도 한다. 떠오르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하나가 하나를 불러들이는 일. 어떤 하나를 생각했는데 다른 하나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일. 하나와 다른 하나가 둘보다 커져 내 삶에 깊숙이 개입하는 일. 그 일들이 모여 세월이 되는 일. 나를 이루는 일. 이와 비슷하게,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하면 자연스럽게 시집을 떠올린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면 이기성의 ‘타일의 모든 것’이 떠오른다. 안국동에 갈 일이 생기면 장이지의 ‘안국동울음상점’이, 일요일 밤에는 어김없이 이성미의 ‘칠 일이 지나고 오늘’이 떠오른다. 지하철에서 나와 부딪혀 허물어진 그의 뒷모습을 봤을 때는 김중일의 ‘아무튼 씨 미안해요’가, 막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때는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이 떠올랐다. 떠올린 것은 머리였을까, 가슴이었을까. 어쨌든 참치김밥에 라볶이를 먹은 것처럼 배가 부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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