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꿈만 같던 백수 탈출…기쁨은 잠깐이더라

입력
2014.10.16 04:40
0 0

"새벽별 보며 출근해 밤샘 야근, 평생 이렇게 살다 늙어가겠지

떠밀리듯 들어온 회사 비전도 없고 그만둬도 막막하기는 매한가지 휴~"

세계일주 계획·레저활동 등에 빠져 잃어버린 나만의 꿈 찾는 이 늘어

취업이 가능할까. 20~30대라면 취업준비생 시절 한번쯤 거쳤던 의문이다. 면접에서 낙방한 것은 수십 번, 이력서를 낸 것은 수백 번을 헤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김난도 교수의 저서명)는 세상의 충고가, ‘천 번을 떨어져야 취직이 된다’는 의미로 들린다. 취직이 안 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는 자괴감이다. 그렇게 짧게는 1년, 누군가는 그 이상의 시간을 보낸다. 일단 취업만 하면 모든 것을 보상받게 될 거라 믿으며.

그러다 취업이 됐다. 어떤 이는 “서울의 지하철 2호선을 수십 번 순환하다 지쳐 포기할 무렵 ‘이번 역에서 하차하라’는 통보를 받은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이게 꿈인가 싶어’ 매일 출근 후 책상을 쓰다듬으며 뿌듯해했다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딱 거기까지다. 막상 겪어본 현실은 호락하지가 않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출근과 반복되는 초과근무. ‘먼지 같은 일을 하다 먼지가 되어버린’(웹툰 ‘미생’의 대사)듯한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렇게 살다가는 남은 20대, 아니 30대까지 눈깜짝할 새 지나버릴 것 같은 절망적인 예감도 엄습한다.

그러면서 차차 깨닫게 된다. 결국 문제는 꿈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취업이었다. 대학 입시도 목표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었다.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들었던 기분도 ‘끝났다’는 안도감이 먼저였으니.

취업과 동시에 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고된 근무가 이어지며 꿈과 함께 삶도 사라져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저만 이렇게 힘든 건가요?”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취업전쟁에서 살아남은 후 1년여의 시간 동안 새내기 직장인들이 겪고 있는 고민, 나아가 다시 꿈을 찾기 위한 그들의 분투를 담은 기록이다.

다시 출발선에 서고 싶은 사람들

스물 여섯 살 이창규(가명)씨는 ‘반수’중이라고 처지를 설명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재수를 준비하는 대학생처럼, 회사에 적을 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다. 대형건설사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 중인 그는 집안 사정 때문에 대학시절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취업을 했다. 근무지역, 회사 분위기, 연봉 등 조건도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전공이었다. 기계공학이 전공인데 회사에서의 업무는 화학공학 분야가 대부분이었다. 생소했고, 그러다 보니 의욕도 성과도 나지 않았다. 이씨는 “떠밀리듯 취업을 하고 나니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다른 회사의 공채 시험에 지원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같은 부서나 주변 친구 등 취업에 성공한 이들 대부분이 비슷하게 떠돌이처럼 살고 있다”고 말했다.

스물 아홉 살 박선경(가명)씨도 이직을 꿈꾸고 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해 중공업 회사에 취직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박씨는 “취업 후의 일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채 입사를 해서인지 재미도 없고 회사 생활에 비전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없다. 그는 “그만둬도 뭘 해야 할지 막막하긴 마찬가지”라며 “적성에 더 맞을 것 같은 곳으로 이직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

서른 살 김대성(가명)씨는 졸업 후 1년 넘게 백수로 지내다 전공(생명공학과)을 살려 중소제약사에 입사했다. 맡은 일은 생산라인의 분석업무. 문제는 3조 2교대 근무라는 점이었다. 낮과 밤이 바뀌고 주말에도 회사에서 살다시피 했다. 김씨는 “집에 오면 골아 떨어지기 바쁘고 친구들도 전혀 만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사는 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보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가정이 있는 상사들도 같은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을 보면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절망감이 더욱 깊어졌다. 결국 1년 반 만에 사표를 냈다. 김씨는 “퇴사일이 되기도 전에 후임자가 채용됐다”며 “회사는 그런 곳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백수 생활 6개월째, 그의 새로운 꿈은 500일의 세계일주다. 첫 여행지는 브라질 상파울루. 내친 김에 200일 정도 남미에 머물 생각으로 스페인어도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여행 스터디 모임’에도 가입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는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 뭘 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세계일주라는 꿈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스물 여덟 살 김선영(가명)씨는 지난달 한 대학병원 연구소를 1년 만에 관뒀다. 연봉도 적지 않고 정년퇴직까지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았다. 주 6일 근무에 밤 10~11시 퇴근이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일이 즐거운 것도 아니었다. 1년만 채우고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참고 버텼다. 김씨는 “일단 휴식을 한 후에 뭘 할지에 생각해보려고 한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삶에 여유가 있고 즐거운 일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둥지 안에서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

스물 일곱 살 최경수(가명)씨는 올 초에 ‘쓰레빠(스포츠레저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라는 사내 동호회에 가입했다.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계기가 됐다. 작년 초 IT분야 대기업에 입사한 그는 자신이 거대한 공장의 부속품 같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최씨는 “입사 전에도 짐작은 했지만 막상 다녀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며 “일에만 빠져 살다 젊음이 사라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쓰레빠는 사원들끼리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하면서 다양한 레저스포츠를 경험하는 동호회. 그는 “새로운 스포츠를 접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스물 아홉 살 허재선(가명)씨는 요즘 새로운 활동에 푹 빠져있다. 건축설계사무소를 다니는 그는 “원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일이 너무 많고 지쳐서 다른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 오더라”며 계기를 설명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오픈컬리지’라는 회사 밖의 학습 모임. 대학처럼 학기 별로 학비를 내고 관심 분야를 골라 취미활동을 하는 것으로 활동 중인 회원이 350명에 달한다. 허씨는 지난 학기엔 피아노를 연주해 8월에 음악회를 열었고, 이번에는 ‘디자인 thinking’이란 모임에서 전시회를 기획 중이다. 그는 “막연하게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목적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만의 삶을 찾고 싶은 이들이 모인 곳”이라고 설명했다.

●‘취업증후군’해결책은? 신입사원 네명 중 한명은 1년 內 퇴사 양질의 일자리 적다지만 지나치게 이상만 추구하는 건 아닌지

취업 후 찾아오는 극도의 허무함과 직장생활에 대한 불만족. 일명 ‘취업증후군’이라 부를 만한 이 같은 증상은 사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돈을 내고 다니는 학교생활과 돈을 받고 다니는 직장생활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직장인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과거에 비해 자못 심각한 수준이라 할 만하다. 6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405개 기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 채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25.2%로 집계됐다. 2010년(15.7%)과 2012년(23.6%) 조사 결과에 비해 해마다 퇴사율이 높아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우선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입시를 치른 후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사라질 정도로 취업 경쟁이 혹독해지고 있는 반면 고용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는 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김수현 연구원은 “수년 째 불황이 이어지면서 비정규직 등 좋지 않은 일자리가 청년층에게 돌아가고 있다. 취업 후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증가하는 것은 구조적인 원인이 크다”고 말했다.

자아 정체성 확립이 늦어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30대 초반이 돼도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젊은 세대의 상당수가 청년기와 성년기 사이에 낀 ‘이머징 어덜트후드(emerging adulthood: 아직 완전한 성년기가 발현하지 않은 상태)’에 속해있다는 분석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갈수록 20~30대의 직업 정체감 형성이 떨어지고 있는데 인구 고령화와도 맞물린 현상”이라며 “정체감이 확립되기 전에 직업을 탐색하게 되면서 직장에 들어간 후 만족을 못하고 잦은 야근과 주말 업무 등을 겪으면서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결책이 있을까. 구조적인 배경이 있는 만큼 정부나 기업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 연구원은 “정부가 직접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직업교육훈련시스템을 통해 숙련을 쌓게 하면 청년들이 적성을 찾아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 세대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있다. 곽 교수는 “지나치게 이상과 꿈을 추구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어떠한 분야에서든 10년간 지속적이고 정교한 연습과 훈련을 통한 자기발전을 한다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김진주기자 pearlkim72@hk.co.kr

박나연인턴기자(경희대 호텔관광대 4)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