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포교 숭산 스님 열반 10주기
우주 만물은 결국 다 같은 하나...간명한 언어로 진리 설파해
가르침 따르는 해외 수행자 5만명
세계일화대회 여는 제자 대봉 스님
세계 각국 돌며 3년에 한 번 개최...올해는 공주에서 오늘부터 13일간
각국 수행자 300여명 참가 진행..."현대 젊은이 직면한 고민에 초점"
“당신은 누구입니까(Who are you)?”
질문을 했는데, 질문이 돌아왔다.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린 숭산 스님(1927∼2004)의 전법(傳法)제자 중 한 명인 대봉 스님(64ㆍ사진)을 만난 자리에서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이 어떻기에 서양인들이 매료됐느냐”고 묻자, 스님이 되받아 친 질문이다.
몇 초 후, 미국인 스님이 말을 이었다. “모르죠?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찰나일지라도 당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그 순간만큼은 하나가 되는 겁니다.”
숭산 스님이 ‘우주 만물은 결국 다 같은 하나’라는 진리를 이처럼 간명한 언어로 설파했다는 얘기였다. 숭산 스님은 1944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후 1947년 충남 공주 마곡사에서 출가해 수덕사에서 고봉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 1966년부터는 세계 각국을 돌며 한국 선불교 포교에 힘썼다. 지금도 독일, 영국, 프랑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폴란드, 러시아, 리투아니아 등 30여개국에 100여개의 선원이 있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수행자는 약 5만 명으로 추산한다. 대봉ㆍ대광 스님을 비롯해 대진ㆍ현각(미국)ㆍ청안(헝가리)ㆍ무량(미국) 스님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외국인 스님들이 그의 제자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대봉 스님을 사로잡은 숭산 스님의 한 마디도 본질을 꿰뚫는 짧은 질문 하나였다. 27살이던 1977년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한 선원에서다. 다른 수행자들은 너도나도 숭산 스님에게 불교적인 질문을 열심히 던지던 중이었다. 당시 잠수함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던 대봉 스님은 속으로 이런 의문을 갖고 있었다. ‘스님, 앞으로 선원에 들어가 살까요? 아니면 동료들처럼 보트나 하나 사서 바다 위에서 살까요?’ 인생의 행로, 삶의 본질에 대한 상념이었다. 속으로만 생각한 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봉 스님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수행자들과 대화가 끝난 뒤 홀로 그릇을 닦던 대봉 스님에게 숭산 스님이 다가와 아랫배를 쿡 찌르며 물었다. “이것은 무엇이냐?” 대봉 스님은 답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얼이 빠진 채 한참을 있다가 숭산 스님의 방에 찾아갔다. “스님 더 가르쳐주세요.” 숭산 스님이 답했다. “오직 모를 뿐. 다만 정진하는 거야(Only don’t know. Only go straight).” 다음날로 대봉 스님은 뉴욕에 있던 직장을 때려치고 숭산 스님 밑으로 들어갔다. 숭산 스님이 던진 질문은 대봉 스님 인생의 화두가 됐다. 1984년 출가한 대봉 스님은 현재 계룡산 무상사의 조실 겸 주지를 맡고 있다.
대봉 스님은 “우주에 있는 모든 실체가 하나라는 것이 진리지만 실체가 무엇인지 파고들어가면 누구나 모르는 게 답”이라며 “학교에서는 모르면 성적이 나쁘지만, 선수행에서는 정말로 모르면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했다.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기리는 세계일화대회는 3년에 한 번 세계 각국을 돌며 열린다. 스님의 열반 10주기인 올해 개최지는 한국이다. 대봉 스님을 대회장으로, 16일부터 28일까지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 등에서 각국 수행자 300여명이 참석해 진행된다. 대봉 스님은 “과거 서구의 부유한 나라의 젊은이들이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했듯, 현재 한국의 젊은이도 오로지 내 성공만 중요한 경쟁의 삶을 살고 있다”며 “이번 대회는 현대의 젊은이들이 직면한 고민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현대인들은 돈이나 사회적 지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런 풍조는 사회를 도태시키는 요소입니다. 숭산 스님이 주신 가르침의 핵심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되찾느냐’입니다. 수행의 목적은 이 자성, 참나를 찾아서 남을 돕는 데 쓰는 거지요.”
숭산 스님은 생전 유머와 감동이 있는 쉬운 말로 제자들에게 깨달음을 줬다. 사례 한 가지. 외국인 제자 하나가 하루 3,000배를 하며 드린 백일기도가 끝난 뒤 숭산 스님에게 이런 시를 써드렸다. “용맹정진은 어렵지 않고 발심수행(수행하겠다는 마음이 처음 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백일기도는 똥통. 선원도 부질없는 것. 한 생각?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
스님이 시로 화답했다. “용맹정진-매우 힘든 것! 발심수행-어렵지 않은 것. 어렵게도, 쉽게도 만들지 말라. 100일뿐만 아니라-온 생애가 소똥! 소똥을 깨달으면 온 우주가 멋진 선원이라네. 한 생각? 크게 그르친다. 할! 딱, 딱, 딱, 딱. 타자기 소리.”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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