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에게 에너지 자립이란 아득한 일처럼 생각된다. 거기에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지금보다 더 싸게 에너지를 만들어 자급하자고 한다면 정말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꿈을 꾸며 길을 찾는 이에게는 길이 열리는 법이다. 우리나라에도 에너지 자립의 꿈을 가장 먼저 구현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도서지역이다.
서해와 남해 바다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 수 많은 섬들이 있는데, 많은 곳이 육지와 전력망으로 연결돼 있지 않다. 이런 도서지역 대부분은 디젤 발전기로 전력을 생산해 공급하다 보니 전력생산 비용이 육지보다 적어도 5배 이상 들어가고 주민 수가 적은 도서지역은 10배가 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노후화된 디젤발전 설비로 인해 전력공급이 불안정하고 다량의 온실가스와 매연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도서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에너지 저장장치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기술로 발전량ㆍ소비량을 조절한다면 지금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신기술을 ‘마이크로그리드’라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나라는 이미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미 몇 년 전 제주도 구좌읍에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를 만들어 기술 개발을 마쳤고 이를 제주 가파도와 전남 가사도에 적용해 디젤발전기를 대신하는 신재생에너지로 필요한 모든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가사도는 주민이 채 200명도 되지 않는 전남 서해안에 위치한 아름답고 자그마한 섬이다. 얼마 전 가사도에서 있었던 마이크로그리드 준공식에서는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매연도, 소음도 없이 만들어내는 전기를 에너지 저장장치와 전력제어 신기술을 활용해 조절해서 육지보다도 더 안정된 전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 발전소나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는 때에 주민들의 환영을 받는 에너지 신기술이 등장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육지와 전력망으로 연계되지 않은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은 울릉도이다. 주민은 1만 명 남짓이지만 매년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천혜의 녹색섬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울릉도에 공급되는 전력의 95%는 디젤발전기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매연과 온실가스 배출로 청정한 자연환경이 날로 훼손돼 가고 있다. 발전비용 또한 육지보다 훨씬 높아서 매년 190억원의 결손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서도 전력사용량은 육지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 발전설비의 확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런 울릉도를 에너지 신기술을 도입해 환경과 기술 그리고 관광이 조화된 친환경에너지 자립섬으로 만들어 보려는 야심찬 계획이 만들어졌다.
2017년까지는 대규모의 태양광발전과 에너지 저장장치 그리고 운영시스템을 도입해 전력자급률을 높이고 2021년까지는 연료전지와 지열발전을 도입해 100%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하려는 방안이다. 여기에 필요한 대부분의 비용은 국가재원에 의존하지 않고 민간자본을 유치해 조달하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 한국전력과 경북도, 울릉군, 그리고 참여기업들이 함께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곧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려고 한다. 수익성을 확보하고 자생력을 갖춘 지속 가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수익의 일부분은 울릉도 주민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환경도 보전하면서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창조경제의 큰 열매가 에너지 신기술을 활용한 울릉도에서 맺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도서지역만이 섬이 아니다. 중동지역 같은 사막이나 아프리카 같은 오지의 부락들도 역시 전기의 섬이다. 이런 곳을 전력망으로 연결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여기에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마이크로그리드를 만들어 전력을 공급한다면 훨씬 경제적일 것이다. 울릉도에서 개발되고 검증될 기술을 기다리고 있는 세계시장은 실로 막대한 규모이다. 울릉도에서 먼저 에너지 자립의 꿈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문승일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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