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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어린 시절 이야기

입력
2014.10.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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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댐이나 도로를 만드는 분이다. 가족과 떨어져서 살지 않겠다는 아빠를 따라서 초등학교를 4개나 다닌 어린 시절, 항상 새로운 학교에 재빨리 적응해야 했다. 그게 늦을수록 학교 다니는 것이 힘들어졌다. 2학년 때 서울에서 안동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에서 온 나를 반기는 아이들도 있었고,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들일 수록 나를 싫어했다. 하지만 나도 지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초반에는 그런 긴장감에 피곤했다.

힘든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안동에서 지냈던 3년은 참 좋았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30분 정도 걸어 가야 했다. 늘 두 살 어린 여동생 손을 꼭 잡고 학교를 다녀왔다. 둘이 합쳐 100원 씩 받던 용돈을 모아 떡볶이도 사 먹고, 계란빵도 사 먹었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정육점에서 소머리나 돼지머리를 보면 눈을 가려 주기도 했다. 동생을 못살게 구는 녀석이 있으면 반드시 응징했다. 같이 서예 학원을 다니고, 엄마 몰래 만화책을 보기도 했다. 배를 깔고 누워 학습지를 풀다가 지겨워 지면 정답지를 보고 다 베껴 써 놓고는 나가 놀았다. 물론 그런 다음에는 엄마한테 혼이 났다.

과자를 만든다고 밀가루 반죽을 해서 프라이팬에 굽기도 했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그 몹쓸 과자들을 퇴근 한 아빠에게 내밀며 우리가 만들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기억도 난다. 아빠는 웃으며 맛있게 잡숴 주셨다. 그 말도 안 되는 과자를… 둘이 놀아도 재밌었다. 참 조그마했던 내 동생에게 나는 늘 대장이었다. 지금은 그 녀석이 오히려 나를 돌봐 준다. 음악만 해서 사회적인 문제들 앞에 어설픈 나를 위해 뭐든지 해줄 그런 든든한 동생이다.

주말에는 아빠랑 약수터에 갔다. 뱀이 벗어 놓은 허물을 발견하기도 하고, 커다란 개가 있는 집 앞에서는 아빠 뒤로 숨었다. 연꽃의 뿌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거나, 딱따구리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서 벌레를 잡아 먹는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걸었다. 우리들이 끊임없이 질문하는 온갖 꽃과 나무들의 이름도 척척 알고 계셨다. 그러다 막힐 때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서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러면 귀신 같이 알고는 “아니지~? 아니지~?”하면서 함께 웃었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안 떨어지나 한참 기다려 보기도 하고, 도토리를 잘 보이는 곳에 놓고 다람쥐가 오지 않을까 숨어 있기도 했다. 한번은 산에서 고라니를 만났다. 동생과 나는 그게 ‘아기 사슴 밤비’에 나오는 그런 사슴인 줄 알았다. 길을 잃은 아기사슴을 집에 데려가 키우자고 아빠한테 데려와 달라고 했다. 아빠는 고라니를 향해 뛰었다. 당연히 빈 손으로 돌아오셨지만 그 기다리는 몇 분 동안 사슴을 키우게 될 거라는 기대에 가슴이 쿵쿵 뛰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약수터가 있는 그 뒷산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놀이터를 휘젓고 다니며 한참 놀다 아빠 손을 잡고 집에 왔다. 아빠의 손은 늘 따뜻했다.

작은 언덕 아래에 도랑이 흘렀고, 그 옆에 우리 집이 있었다. 안채는 주인집, 건너채는 우리집이 살고, 사랑방에선 고등학생 언니가 자취를 했다. 마당 가운데 수도가 아닌 펌프가 있었고, 장독대가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있었다. 세 가구가 함께 쓰는, 그야말로 옛날식 화장실이었다. 밤에 자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지면 말도 못 하게 귀찮으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주의했다. 늦가을 어느 날이었다. 한밤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은 것이다. 혼자 가기는 너무 무서워서 엄마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랑 마당에 내려서서 고개를 든 순간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그 수많은 별들… 까만 하늘에 총총히 빛나던 그 별들. 엄마랑 둘이 꼭 껴안고 서서 한동안 별을 봤다. 엄마는 별자리를 잘 알았다. 손으로 허공에 선을 그어가며, 저 더블유 모양은 ‘카시오페아’, 저 국자 모양이 ‘북두칠성’, 또 십자 모양을 한 ‘백조자리’…

그렇게 한참 별자리를 보며 속삭였다. 지금도 코 끝이 시린 느낌이 들면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난다. 지금도 별들은 우리의 머리 위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겠지… 내가 꼬마였던, 어린 시절과 함께.

꽃별 해금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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