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40일 동안의 잠적을 끝내고 공개 활동을 시작했다. 이로써 북한지도자와 관련한 온갖 유언비어도 잦아들게 됐다. 왜 우리는 북한 지도자가 보이지 않으면 건강이상설, 권력변동설, 급변사태설을 반복해서 말하는가? 근원적으로는 북한이 폐쇄체제를 유지하면서 지도자 건강과 관련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자 중심의 유일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북한에서의 지도자 유고를 급변사태로 연결 지으려는 희망적 사고가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김정은의 장기 은둔은 예견된 것이었다. 잠적 중인 지난 9월 25일 조선중앙TV가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애쓰다 ‘불편하신 몸’이 됐다는 내용의 동영상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는 뇌졸중 이후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인민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중국방문 당시 외신에 의해서 불편한 걸음걸이가 포착됐을 뿐이다. 김정은의 경우 아픈 다리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공개하고 장기치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알리고 치료에 들어갔다. 이것이 객관적 사실이자 정확한 정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건강이상설이 확대 재생산되자 김정은이 아직 불편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신이상설까지 나오는 등 유언비어가 난무하자 다소 몸은 불편하지만 통치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나온 것이다.
어느 나라든 지도자의 건강변수는 국정수행 안정성 여부를 분석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수령’의 권위가 절대화해 있는 북한의 경우 지도자의 건강문제를 체제안정과 직결되는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2008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김정일의 유고는 곧 급변사태’라는 등식이 정세를 지배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김정일이 죽고 북한이 붕괴하면 핵문제 등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하면서 ‘기다리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북한붕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맞서 북한은 천안함-연평도사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발사 등 도발과 위기조성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북한지도자의 건강변수를 잘못 계산한 이명박 정부의 기다리는 정책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 향상을 막지 못했고 남북관계 복원도 이뤄내지 못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북한을 고립봉쇄하고 기다리면 ‘통일이 도둑같이 찾아온다’는 낙관론에 빠져 정세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던 것이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 제1비서의 현지지도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남북관계 복원의 불확실성 요인 하나는 사라졌다. 아마도 김정은이 회복이 덜된 불편한 몸을 드러낸 것은 남북관계 복원과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 등 대외관계 확장 움직임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지도자 건강변수가 작동하면 남북 고위급 2차 접촉 날짜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전방위적인 대외관계 확장노력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김정은 제1비서의 통치력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통일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말을 언급하고, “5ㆍ24 문제 등도 남북한 당국이 만나서 책임있는 자세로 진정성있는 대화를 나눠 풀어나가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남북접촉의 전망을 밝게 하였다. 박 대통령의 5ㆍ24 조치 해결의지 표명은 대북전단 문제로 불거진 갈등을 조기에 수습하고 예정대로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대화를 갖자는 대북메시지로 볼 수 있다. 우리 정부가 2차 고위급접촉을 제안할 때 이산가족상봉 등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하여 5ㆍ24 문제도 의제에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다시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은 북한의 핵심 관심사인 인민생활향상과 관련한 문제를 의제로 다루는 것에 따른 유인효과를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북측이 전단살포 문제로 “제2차 고위급접촉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면서도 “아직 선택의 기회는 있다”고 했다. 남측이 좋은 선택을 했으니 북측이 화답할 차례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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