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라디오에서 매주 시 한 편씩 소개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단어 하나를 선정하고 그 단어를 색다른 시선으로 접근한 시들을 주로 소개한다. 청취자들이 실시간으로 해당 단어에 대한 자신만의 사연을 보내주는데, 불쑥불쑥 놀랄 때가 많다. 누군가에게 얼음은 여름을 나게 해주는 것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얼음은 현재 자신이 놓인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절실하고 겨울에는 징글징글하다는, 재기 넘치는 사연을 듣고서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다. 그런 사연을 접할 때마다 단어의 외연이 절로 넓어지는 기분이 든다. 지난주에 선정한 단어는 장래 희망이었다. 어렸을 때의 장래 희망이 사연의 주를 이룰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많은 분들이 다양한 사연을 보내주셨다. 개중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연 하나를 소개한다. “저는 올해 예순여섯 살입니다. 어느덧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제게는 아직 장래 희망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지금까지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베풀고 작은 것들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내주는 게 제 장래 희망입니다.” 이 사연을 읽는데, 콧마루가 찡해지고 말았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만 장래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닐 텐데, 지금껏 저 단어는 어른들과는 거리가 먼 단어로 인식되어왔던 것이다. 장래의 뜻에 대해 곰곰 생각한다. 다가올 앞날. 죽을 때까지 우리는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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