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이 본격적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가을은 짧고 마음만 바쁘다. 그러나 중남부지방 단풍은 10월말이나 11월초는 돼야 절정이다. 급한 마음 가다듬으면 하루 정도의 나들이로도 충분히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억새와 단풍이 고운 가을여행지를 소개한다.
●가을에 가장 멋진 ‘남한의 소금강’, 대둔산
충남 논산과 금산, 전북 완주의 경계에 위치한 대둔산은 봄이면 철쭉, 여름이면 반딧불이, 겨울이면 설경을 자랑하는 유명한 산이다. 그리고 변치 않는 단풍 명소다. ‘남한의 소금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계절마다 풍광을 달리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을의 단풍 경치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산 정상에서 아래로 내닫는 단풍의 물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바라보는 방향마다 대둔산의 바위 얼굴이 연지곤지 물든다. 80m 높이에 걸린 금강구름다리와 127개 계단이 가파른 삼선계단에 서면 후들거리는 다리만큼 아찔한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기암괴석들 사이사이에 흩뿌려진 노랗고 붉은 물결이 가을바람을 타고 손짓한다. 해발 878m 마천대 정상에서 굽어보면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오르는 등산객마저 울긋불긋한 단풍과 조화를 이뤄 또 하나의 가을 풍경이 된다. 서울에서 가려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추부IC에서 17번 국도를 타면 된다. 대둔산 케이블카는 가을 성수기에 오전8시30분부터 오후6시20분까지 운행한다.
●붉은 단풍과 청풍호의 조화, 제천 금수산
금수산은 충북 제천과 단양 사이 해발 1016m의 산으로 중부지방에서 가장 먼저 단풍을 맞이하는 산이다. 멀리서 보면 능선이 마치 길게 누워있는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어 미녀봉이라고도 불리는데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를 지낼 때 산의 자태가 곱고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고쳐 부른 것이 금수산이 되었다. 장회나루에서 청풍나루를 오가는 유람선에서 감상하는 경치도 그만이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역시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등산로는 제천 수산면 상천리와 단양 적성면 상리, 양쪽에서 나 있다. 수산면 쪽에서 올라가면 청풍호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풍광이 아름답고 용담폭포와 선녀탕 등 숨은 비경이 많다. 특히 용담폭포 바위 사이로 붉은 손을 내민 단풍들이 물보라와 어우러져 볼 만하다. 그 건너편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용담폭포와 선녀탕은 말 그대로 ‘추색(秋色)’의 진수를 보여준다.
상리마을을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 중턱에는 용소가 있는데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물이 좋아 산을 찾는 이들의 좋은 쉼터가 된다. 정상에서는 호수를 따라 낮게 뻗은 산세와 충주호의 푸른 물결이 어우러져 비단처럼 고운 풍경이 펼쳐진다. 수산면으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남제천IC를, 적성면으로 가려면 북단양IC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물안개 속의 노란 은행나무, 괴산 양곡저수지
충북 괴산군 문광면 양곡리, 평범한 시골마을이 최근 ‘양곡저수지’은행나무길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1975년 양곡1리 주민들이 마을 입구가 허전하다고 생각해 은행나무 100여 그루를 심은 게 시작이었다. 2013년 방영된 KBS 드라마 ‘비밀’에서 지성과 황정음이 만나는 길로 나와 더욱 화제가 됐다. 4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마을 진입로 400m 양쪽엔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장관을 연출한다. 특히 이때쯤이면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수면 위로 비친 은행나무 가로수가 데칼코마니를 이뤄 전국에서 사진 동호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괴산군은 저수지 주변 2km 구간에 은행나무를 추가로 심고, 수변 데크와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추가하는 ‘황금빛 에코로드 명소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통상 ‘양곡저수지’로 알려져 있지만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는 공식명칭은 ‘문광저수지’다.
●억새여행의 고전, 보령 오서산
계룡산 대둔산과 함께 충남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알려진 오서산은 억새여행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얼마간의 산행이 고생스럽지만 정상부근에서 만나는 억새 잔치는 그 정도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장관이다. 등산로를 따라 촘촘하게 늘어선 억새가 아니라 가을날 황금들녘처럼 억새바다가 2km 정도에 걸쳐 펼쳐진다. 정상에서 조망하는 보령의 가을들판과 서해바다 풍경은 덤이다. 등산로는 홍성 광천읍 담산리 상담주차장, 보령 청소면 성연리 오서산 산촌생태마을 또는 오서산 자연휴양림 등 대체로 3곳에서 출발한다. 상담주차장에서 출발해 돌아오거나 산촌생태마을로 종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담주차장에서 출발해 정암사를 지나면서부터는 급경사 계단길이 능선까지 이어져 꽤 힘든 길이다. 전망대부터 정상까지는 탁 트인 능선으로 완만하다. 은빛 억새가 절정을 이루는 26일 오서산 자연휴양림에서 ‘억새 등산대회’가 예정돼 있다.
●놀이공원에서 즐기는 단풍여행, 서울랜드와 에버랜드
서울랜드 외곽순환길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풍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도로 양쪽으로 빼곡히 들어선 나무들이 단풍터널을 이룬다. 과천 저수지 산책길도 나들이 장소로 인기다. 서울대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웬만한 단풍산행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놀이기구를 타고 단풍을 감상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청계산부터 공원까지 단풍으로 물든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울랜드 단풍은10월 말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에버랜드에도 수면에 비친 단풍이 아름다운 호암호수와 은행나무 군락이 펼쳐진 홈브리지 호스텔 진입로 등 주변 단풍 명소가 많다. 영동고속도로 마성IC부터 에버랜드 정문에 이르는 총 5km 구간은 단풍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여유롭게 단풍을 감상하고 싶다면 산책 코스가 제격이다. 특히 동물원 입구부터 약 200m 구간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단풍명소로 꼽힌다. 타 계절에 비해 이용객이 적어 여유롭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캐리비안베이에서 즐기는 단풍도 이색적이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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