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장대해수욕장은 가봤는데 그곳이 서천이었나? 장항선은 많이 들어봤는데 장항이 서천인가? 한산 모시와 한산 소곡주는 유명한데 한산이 어디더라? 한참 ‘서천’얘기를 나누다가도 ‘서산’이 불쑥 튀어나오기 일쑤다. 충청남도 남서쪽 끝자락 서천은 이렇듯 선뜻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는 다소 애매한 곳이다. 쾌적함, 상냥함, 즐거움이라는 말뜻에서 따왔겠지만 ‘어메니티(amenity) 서천’이라는 구호도 썩 와 닿지는 않는다. 그 앞에 붙인‘세계 최고의 생태도시’라는 수식어도 과장이 심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목표와 지향점이라면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 환경과 관련한 두 개의 대형 국립 생태 시설이 서천에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룻동안의 지구 생태여행, 국립생태원.
생태원이라는 이름이 낯설다. “이곳이 동물원인지 식물원인지 놀이동산인지 연구시설인지 물어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곳은 그냥 생태원입니다” 강형욱 국립생태원 홍보과장의 설명이다. 생태라는 말 자체가 동식물을 하나하나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기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생태원은 언급한 모든 기능을 아우르는 개념이고 규모도 방대하다. 약 100만㎡(30만평) 규모로 축구장 90여 개 정도의 크기다. 다섯 종류의 기후대를 재생한 에코리움, 하천과 습지생태를 재현한 금구리구역, 한반도의 자연을 만나는 하다람구역, 노루와 고라니를 만날 수 있는 고대륙구역, 새들의 휴식공간 나저어구역으로 나눴다. 여기에 연구와 서비스 등에 필요한 시설인 연구교육구역과 생태원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방문자센터를 갖췄다.
생태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설은 단연 에코리움(Ecorium)이다. 열대 온대 사막 지중해극지 등 세계의 기후대별 생태계를 옮겨놓은 공간으로 작은 지구에 비유할 만하다. 섭씨 35도를 유지하는 열대관에 들어서면 상큼한 열대식물이 내뿜는 향기부터 다르다. 열대식물 특유의 가지 뿌리가 굵은 실을 늘어뜨린 것처럼 공중에서 내려와 신비한 밀림의 느낌을 선사한다. 버마구렁이가 나무 뿌리 아래 웅크리고 있고, 멕시코산 도롱뇽인 우파루파도 유유자적, 이구아나의 긴 하품도 눈길을 끈다. 사막관은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와 나미브, 남아메리카의 아타카마, 북아메리카의 모하비 등으로 구분해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동식물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선인장이 압권이다. 목도리도마뱀과 방울뱀도 만날 수 있다.
지중해관으로 들어서면 짙은 허브향이 코끝으로 스민다. 유럽지중해 식생을 중심으로 배치한 이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식충식물과 소설 ‘어린왕자’를 통해 잘 알려진 바오밥나무도 볼 수 있다. 한국의 기후대가 포함된 온대관은 곶자왈 지형의 생태를 그대로 옮겨와 작은 제주도라고 할 만 하다. 한강과 산악 계곡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도 따로 전시해 눈길을 끈다. 극지관은 위도에 따른 다양한 동식물을 박제표본으로 전시하고 있다. 살아있는 동식물로 채운 다른 전시관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럽다. 그나마 평균기온 3℃를 유지하는 수족관에서 유영하는 펭귄들의 애교가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에코리움을 나서면 아이들의 인기놀이터 하다람광장이다. 개구리 혀 미끄럼틀과 무당벌레, 버섯 그늘 등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을 캐릭터로 형상화한 놀이시설들이 아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그 밖에 야외에는 우리나라의 식생을 찾아볼 수 있는 ‘한반도 숲’, 습지 식생을 재현해 놓은 ‘습지생태원’등을 조성해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시간이 모자랄 만큼 공들인 흔적이 보인다. 유아들에겐 호기심 천국이고, 학생들에겐 생태학습장이다. 생태와 환경에 관심 있는 어른들은 오히려 눈 여겨 볼 부분이 더 많다. 하루를 투자하면 세계 곳곳의 생태를 모두 둘러보는 셈이니 가족 나들이 장소로는 제격이다.
다만 개장한지 채 1년이 안되어 외부 조경은 다소 부족하다. 나무와 풀들이 제 모습을 갖추려면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차량이 진출하는 동선이나 주차장 안내 등도 아직은 미숙한 모습이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청소년 4,000원, 소인 3,000원이다. 장항역에 내리면 바로 후문 매표소여서 접근성이 뛰어난 것은 장점이다. 코레일이 용산 영등포 수원역에서 장항역을 왕복하는 국립생태원 탐방상품‘에코-路’를 판매하고 있다. 국립생태원은 자체적으로 1박2일 탐방을 할 수 있도록 방과 거실이 딸린 숙박시설도 대관하고 있다. 홈페이지(http://www.nie.re.kr)에서 예약할 수 있다.
●바다생물 총 집합,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서천 생태 나들이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다. 해양생물자원의 종합적 관리와 생물주권 확립을 위해 건립된 국립시설이다. 생태원이 대륙 생태환경시설이라면 이곳은 바다 생물의 총집결판이다. 생태원과는 약 7km 떨어져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천장까지 뻥 뚫린 로비에 수직으로 솟은 거대한 원통기둥이다.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투명한 원통기둥 안에 작은 유리상자들이 빼곡하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5천 여종의 바다 생물 표본을 모아놓은 ‘종자은행(Seed Bank)’이다.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터치스크린 검색으로 내부의 표본을 볼 수 있다.
전시관에는 이보다 많은 7,300여 점의 표본을 전시하고 있다.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제1전시실이 핵심이다. 해조류, 플랑크톤, 무척추동물과 척삭동물, 어류·포유류 등의 표본을 전시했다. 해조류와 플랑크톤 전시관에서는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생물을 현미경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바다생물 중 가장 많은 무척추동물관의 표본 전시물은 마치 미술관이나 백화점 명품관의 쇼윈도를 보는 것처럼 우아하게 배치했다. 척추동물에 속하는 어류와 포유류의 거대 박제모습도 인상적이다. 13m 길이의 보리고래를 비롯해 쥐가오리 개복치 등 대형 어류는 플라스틱 모형이 아니라 실제 골격 표본이다.
혹등고래의 모험을 입체다면 영상으로 보여주는 제3전시실은 관람석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극장식이 아니라 카페식으로 좌석의 방향과 모양이 다양하다. 반은 누운 편안한 상태로 영상을 감상할 수도 있다.
하루 12차례 진행하는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곁들이면 더욱 알차다. 홈페이지(www.mabik.go.kr)에서 미리 예약하면 편리하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현재 임시개관 중으로 화·목·토요일에만 운영한다. 그런데도 5월부터 지난 달까지 관람객이 7만 명이 넘을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2015년 정식개관 전까지는 무료입장이다. 장항제련소 뒤 넓은 공간에 덩그러니 큰 건물만 서 있어 아직까지 주변환경이 황량한 게 흠이다. 두 시설 모두 지금보다는 미래가 더 기대되는 생태환경 학습장이다.
서천=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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