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학원 배달 가며 민요와 첫 인연...입문 2년 만에 예능 전수자로 선정
또 듣고 싶다던 요양원 할머니 못잊어...민요 봉사 계속...인간문화재 욕심나
“짜증을 내어서 무엇 하나. 성화를 받치어 무엇 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14일 경기 시흥시 사랑초 국악학원에서는 구성진 ‘태평가’ 한 자락이 신명나는 장구 장단에 맞춰 흘러 나왔다. 노래의 주인공은 시흥지역에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9년차 ‘야쿠르트 아줌마’ 이윤숙(53)씨. 이씨는 22일 홀몸 노인 합동 팔순 잔치에서 분위기를 돋울 사철가와 회심곡, 뱃노래 등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어르신들은 민요와 창에 무척 익숙하시거든요. 충분히 연습하지 않으면 오히려 망신 당할 수도 있어요.”
어릴 때부터 민요에 관심은 있었지만 정식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이씨가 처음 민요를 접하게 된 것은 2010년부터. 이씨의 영업 구역 내 국악학원에서 야쿠르트 주문이 들어와 배달을 갔는데,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가락에 발길을 떼지 못했다. 이씨는 자주 학원에 들러 귀동냥으로 가락을 얻어 들었다. 이 때 이서현 학원장(평남 무형문화 이수자)이 이씨의 재능을 알아보고 정식으로 민요를 배워 보라고 권유했다.
늦은 나이에 민요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입문 2년만인 2012년 ‘평안도 향두계 놀이 예능 전수자’로 선정됐고, 올해 말에는 ‘예능 이수자’ 선정을 앞두고 있다. ‘예능 이수자’ 선정까지 보통 5년 이상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빠른 속도다. 뿐만 아니라 전국 서도ㆍ경기민요 경창대회 신인상, 아차산 전국국악경연대회 동상, 수원 전국국악경연대회 동상 등 전국 단위의 크고 작은 민요대회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다. 적극적으로 민요대회를 찾아 신청서까지 대신 작성해 주는 남편과 큰 딸도 큰 힘이 됐다. 지난해에는 향두계 보존놀이회 대통령상과 시흥 시정발전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이씨는 “근무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워 배달시간만 잘 조절하면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고 말했다.
재능나눔 활동도 활발하다. 2008년 야쿠르트를 배달하던 중 무료 급식 봉사 활동인 ‘밥퍼’와 인연을 맺었다. 갈 길이 바빠 처음에는 갖고 있던 야쿠르트 30여 개를 무료로 나눠주는 정도였다. 그러다 밥퍼 손이 모자라는 날 옆에서 양파를 까기 시작했던 게 본격적인 봉사 활동의 계기가 됐다. 특히 이씨의 민요 실력이 알려지면서 요양원 등에서 민요 봉사와 강의 제의가 잇따랐다.
그는 한 요양원에서의 일화를 잊지 못한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병상에 누운 할머니 한 분이 손짓을 하더니 이씨가 부른 태평가를 힘겹게 읊조리면서 “고맙다. 꼭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처음엔 내가 즐거워서 시작한 민요였지만,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듣고 싶은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2010년에는 웃음치료사 1급, 치료레크리에이션 1급 자격증도 땄다. “민요만 부르면 어르신들이 좀 지루해 하거든요. 중간중간 분위기도 띄우고 웃음도 드릴 겸 공부를 했습니다.”
올해 말 ‘예능 이수자’로 인정 받는 게 목표다. 꾸준한 봉사 활동을 통해 우리 가락 대중화에도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쉽진 않겠지만 인간 문화재까지 욕심 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더 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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