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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산케이칼럼을 읽고

입력
2014.10.14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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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讀賣)신문을 비롯한 일본 주요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을 지난 9일 지면에 실은 모습.
요미우리(讀賣)신문을 비롯한 일본 주요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가토 다쓰야(加藤達也·48)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이 한국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는 소식을 지난 9일 지면에 실은 모습.

산케이신문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냥 산케이로 그대로 불리는 법이 별로 없는 신문이다. ‘극우’ ‘보수’라는 수식어가 늘 붙거나, 좀 입이 험한 사람은 ‘꼴통’이라는 단어를 하나 더 붙인다. 일본에서 특파원으로 있으며 매일 봐온 나 역시 이 신문에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낀다. 산케이가 보수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극우, 보수 신문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한국이라고 없는가. 산케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국내 신문 중 일부 역시 내가 보기에는 산케이와 어느 사안에서는 별로 논조가 다르지 않은 극우 보수 언론이다.

보수라는 이유보다 산케이를 더 불편하도록 만든 건 이 신문이 기사나 칼럼에서 한국인 또는 중국인 혐오 감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애써 하려 들면 그런 감정을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할 수도 있을 텐데 역량이 안 되는 것인지,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건지 이 신문은 그런 감정을 거친 논리에 담아 펼쳐 보일 때가 더러 있다. 한국에 망언으로 유명했던 이 신문 전 서울 지국장 칼럼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동선 문제를 다룬 이 신문의 인터넷 칼럼이 처음 화제가 됐을 때도 칼럼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산케이가 또 얼토당토않은 글을 썼나 보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칼럼을 읽어본 건 지난주 그 글을 쓴 기자가 한국 검찰에 기소된 뒤였다. 무려 22년 동안 한국 근무를 하며 악명 높았던 앞서 말한 전 지국장도 글 때문에 기소 당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글이기에 사태가 여기까지 온 건지 궁금했다.

‘[추적~서울발]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를 만났나?’는 제목의 칼럼은 알려진 대로 7월7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 있었던 당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문답 내용과 그 달 18일자 조선일보 칼럼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 칼럼을 지금 한국에서 나돌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을 소개하면서 그런 현상을 ‘박 정권의 레임덕’과 연결 지어 해석한 글로 읽었다.

물론 이 글에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박 대통령이 읽으면 기분 나쁠 부분이 없지 않다. 검찰이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한 남녀 관계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소문’ ‘도시전설’ 운운해 떠도는 이야기를 전제로 했고 ‘구체적으로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이라며 자신이 이런 이야기의 진실을 파악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밝혔지만 말이다.

나는 법에 무지하기 때문에 소문을 전한다고 밝혔어도 칼럼의 형태로 공론화하면 명예훼손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파원으로 일하며 일본 정치 이야기를 칼럼으로 쓴 경우가 적지 않은 기자 감각으로는 그냥 저급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칼럼이 출처를 밝히고 거의 가져다 쓰다시피 한 조선일보 칼럼도 똑같이 소문을 공론화하고 있다. 다른 점은 거의 한 가지밖에 없다. 검찰이 문제 삼는 ‘남성 관계’라는 표현을 조선일보는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왜 조선일보는 이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알만한 독자들은 다 아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라고 짐작한다면 조선일보와 산케이 칼럼의 차이는 사실상 없는 셈이 된다.

이번 사태를 두고 ‘언론의 자유’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는 박 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국가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산케이 기자의 기소를 보며 내가 다시 궁금해진 것은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대체 무얼 했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은 공표된 총리 동정을 거의 분 단위로 신문에 게재하니 한국 대통령도 일정을 낱낱이 사후 공개하라고 다그치지 않겠다. 자꾸 모욕하지 말라고만 하지 말고 그날 7시간 동안 뭘 했는지 온 국민을 향해, 아니 이제는 국제적인 관심사가 되었으니 전 세계를 향해 그냥 속 시원히 말해주고 훌훌 다 털면 좋겠다. 이게 무슨 국력 낭비고, 나라 망신인가.

김범수 국제부장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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