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수많은 규칙 중 하나를 깨우친 순간, 규칙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는 것의 이름은 뭘까. 오랫동안 고민하던 문제의 실마리가 비로소 드러나고 삶의 원리가 지하철 노선도처럼 선명해질 때, 얻은 것보다 잃은 것에 눈길을 주기에 우리의 영혼은 너무 지쳐 있다.
기준영의 단편 ‘4번 게이트’는 인생에서 가장 불안한 시기, 그 중에서도 유난스럽게 불안했던 열일곱 소녀의 어느 한 때에 관한 이야기다. 의붓아버지가 제 화를 못 이기고 뒤로 자빠져 죽은 여름, 재옥은 어머니, 의붓오빠와 함께 남겨진다. 바벨로 다진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것 외엔 딱히 하는 일이 없는 날건달 오빠의 나이는 엄마와 재옥의 정확히 중간인 스물 여덟 살. 작은 미소도 오해를 살까 봐 아끼게 되는 이 아슬아슬한 관계망에서 재옥의 엄마는 편지 한 장을 달랑 남기고 집을 나간다. “모든 게 괴롭기만 하다. 나 없는 동안 서로 잘 돌볼 거라고 믿을게. 시간이 좀 필요해서 그래, 생각할 시간이.”
재옥에게 주어진 것은 가을엔 나아질 거라는 엄마의 대책 없는 기약뿐이다. 힘주어 울기도, 떨치고 일어서는 것도 애매한 시점에서 재옥은 무중력의 시절을 맞이한다. 어떤 감정도 절대적일 수 없는, 슬픔이든 기쁨이든 분노든 뭐하나 강하게 움켜쥘 수 없는, 감정의 무중력 상태다. 소녀는 TV 속 휴먼 다큐멘터리에 범람하는 눈물을 보며 그들의 감정을 흉내 내보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혼란은 더 가중될 뿐이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무슨 말이 되어 눈앞에 나타날 때까지는 아무하고도, 아무 운명하고도 대화할 수 없었다.”
의붓오빠는 “괜한 생각하는 거면 하지 마라”는 말로 어줍잖은 가족 노릇을 한다. 하지만 열일곱 살 소녀의 눈에 그는 충고의 자격을 가진 어른이 아니라 한 마리 말이다. 단단한 근육과 건강한 치아가 전부인 사람. 세상에 오직 둘만 남겨진 상황에서 재옥이 그에게 느끼는 유대감은, 그러나 그의 어떠함과는 무관한 것이다. 인과가 제거되면서 한층 진하게 농축된 그 유대감에 재옥은 사랑이든 혈육의 정이든 어떤 이름도 붙이지 못한다. 다른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것처럼. “그런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무작정 아무것도 아니면서, 또 아무것도 아닌 무작정인 채로 내게 한결 같은 사람. 별 거 아니면서 별 거인 사람.”
이름 없는 유대감은 당연히 아무런 사건도 일으키지 못하고, 재옥은 혼란 가운데 막연한 기다림을 견딘다. 돌아오지 않는 엄마, 며칠 째 집을 비운 오빠,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는 세상. 그것들에 복수라도 하듯 재옥은 문득 길에서 만나 전화번호를 주고 받은 사십 대의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잠자리를 갖는다. 집으로 오겠다는 남자를 기다리며 머리를 빗던 재옥은 그 기다림이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모든 다른 기다림들에 비해 가장 간편한 기다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을이 되어 엄마가 돌아오고 재옥의 기다림은 일단락된다. 직장인이 된 재옥이 여행을 가기 위해 공항에서 출국수속을 밟을 때 엄마가 전화해 옛날의 그 의붓오빠가 칼에 찔려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전한다. 정신적으로 헐벗었던 그 시절이 비로소 다시 떠오르며 재옥은 진실보다 더 진실인 무엇이 그 순간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은 ‘4번 게이트’에 대해 “위태롭고 아름답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이야기”라고 평했다. 그는 “삶의 양식을 찾는다는 것은 안전한 규칙을 발견하는 것”이라며 “진짜 아름다움이나 진실은 오히려 그 규칙을 찾아내기 전 벌거벗은 삶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애틋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기준영 작가에 대해서는 “젊은 시절의 이상 열기와 그걸 억제하려는 마음의 갈등이 이 작가의 꾸준한 관심사”라며 “전작들이 탁월한 이미지에 비해 다소 모호한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등장인물이 매우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작품의 완성도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작가 약력
1972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동네 신인상 공모에 단편소설 ‘제니’가 당선돼 등단. 소설집 ‘연애소설’,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가 있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