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혈’은 만화작가 강준의 죽음과 그를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역사 속 피해자들의 흔적을 좇는다.
연극에는 두 명의 강준이 등장한다. 현실 세계에서 자살을 택한 만화가 강준과 그가 그린 자전적 만화 ‘이혈’ 에서 연쇄살인을 벌이는 살인마 강준이다. 연극은 극중극의 형식을 띠고 현실과 만화 속 세계를 오간다.
현실과 만화 속 강준 모두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랐다. 한국과 일본 양쪽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점과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추악한 모습 등 탄생의 비밀을 알게 된 강준은 ‘괴물’로 변해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강제 성노예로 끌려간 강준의 할머니는 아들 강한구를 낳고, 강한구는 일본군 장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장교의 딸 에이코를 범한다. 그리고 에이코는 강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강준을 이용한다. 태어나면서부터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밖에 없는 강준은 만화 속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막말을 내뱉은 네티즌들을 죽이고,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살해한다.
극은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극중극 구조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형사들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추리극 형태를 택했다. 관객의 눈을 대변하는 형사들의 시점을 통해 연극은 복수가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는 이유와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현실 세계보다 만화 속 세계가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덕분에 죽은 부모들과 생일 파티를 열고, 이미 성인이 된 강준이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등 극 곳곳에 등장하는 판타지적 요소와 비유가 어색하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음에도 그 표현 방법으로 만화적 기법을 택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일까지 서울 대학로 예술공간 SM에서 공연한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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