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밝은 노래는 못 만들어요. 만들고 싶어도 못 만드는 겁니다. 어두운 쪽에 특화돼 있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쪽이고요.”
두 번째 앨범을 낸 지 6년이 지나 돌아온 이장혁(42)은 남편이 되고 아버지가 됐지만 변함이 없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긴 공백의 흔적이 얼굴에 주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 그림자의 짙은 정도가 다소 옅어지긴 했어도 오랜만에 내놓은 그의 새 음악은 우울과 불안, 외로움의 정서로 가득하다. 3집 ‘Vol. 3’를 내놓은 인디 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을 만났다.
“2년 전에 곡들을 대부분 만들어 놨는데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 발표하지 못했어요. 바꾸고 싶은 게 있었는데 그땐 그럴 만한 환경이 안 됐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6, 7월쯤 밤샘 작업을 시작해 겨우 완성했습니다. 모든 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2012년에 맘에 들지 않은 상태 그대로 냈으면 후회했을 겁니다.”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으로 꼽히는 1집 ‘Vol. 1’(2004)이 록 밴드 스타일의 사운드였던 반면 2008년 발표한 2집 ‘Vol. 2’는 어쿠스틱 기타 위주의 포크 팝을 담았다. 이번 앨범은 그 중간쯤에 위치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전반부는 1집에 가깝고 후반부는 2집과 색깔이 비슷하다.
“첫 곡 ‘칼집’은 무뎌진 저 자신을 표현한 겁니다. 무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담았죠. 곡을 만들면서도 내 음악이 점점 뻔해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뻔한 코드와 편곡은 그래서 일부러 피했습니다.”
이장혁에게 음악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래서 음악가란 두 번째 직업이다. 음악만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지켜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10년간 겨우 세 장의 앨범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결혼하면서 시간이 줄었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니까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육아와 가사도 분담해야 합니다. 앨범 믹싱 하는 내내 그랬어요. 지금은 녹음실에서 일하는데 일반 회사를 다녔다면 절대 못 만들었을 겁니다.”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얼터너티브, 포크 등 록의 다양한 요소를 결합하고 분리하는 실험을 하는 듯한 새 앨범에 담긴 모든 곡은 이장혁이 가사를 쓰고 작곡과 편곡, 프로듀싱까지 했다. 올해의 앨범을 꼽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후보에 올릴 만한 수작이다.
이별 후의 차갑게 얼어 붙은 마음을 노래한 ‘에스키모’, 불면의 밤을 노래한 ‘불면’, 청량리를 걷다가 소나기를 피하는 노인을 바라보며 쓴 ‘노인’, 제 위치에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곡인 ‘낮달’ 등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담은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가사에 대해 “대부분 내 이야기”라며 “직장 생활을 하지 않고 음악만 했다면 사운드적으론 더 좋아졌을지 몰라도 메시지로는 별 게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앨범을 내놓을 때마다 스스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1집이 80%라면 2집은 85%, 3집은 연주나 앨범의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90%가 됐으면 싶다는 것이다. 이장혁은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한계를 많이 느꼈다”며 “예전엔 하면 할수록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고 내 한계를 봤기 때문에 아쉬운 건 없다”고 말했다.
이장혁은 고집쟁이 음악가다. 대중의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음악을 만든다고 말한다. 돈이 되는 음악을 만들 수도 있지만 하고 싶지 않단다. “대중의 취향은 100%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만들건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오로지 음악만 신경 쓰는 편입니다. 일단 제가 맘에 들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팬이죠. 팬들도 그걸 원할 겁니다. 돈이 되는 음악이 뭔지도 알 것 같고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앨범만은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내 앨범만은 내 맘대로 하고 싶어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습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이장혁 3집 ‘Vol. 3’ 중 ‘칼집’
이장혁 3집 ‘Vol. 3’ 중 ‘에스키모’
이장혁 3집 ‘Vol. 3’ 중 ‘불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