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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 "진실 없는 사회, 영화로 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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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 "진실 없는 사회, 영화로 알리고 싶었다"

입력
2014.10.1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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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비수기 불구 125만 관객 넘어

"결과만 좇는 사회 부조리 결정판, 애국주의 다시 생각하는 계기 되길"

'제보자' 촬영 현장의 임순례 감독(왼쪽)과 주연배우 박해일. 영화사 수박 제공.
'제보자' 촬영 현장의 임순례 감독(왼쪽)과 주연배우 박해일. 영화사 수박 제공.

임순례 감독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소재가 아직도 국내 과학계에서 민감한 사안인 탓일 것이다. 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제보자’는 상업적이지 않은 소재에 극장가 비수기에 개봉했는데도 누적 관객수 125만명을 돌파했다. 2005년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논문 조작 사건을 극화한 이 영화는 2일 개봉 후 개봉 3주차에 접어들었지만 꾸준히 관객을 끌어들이며 연일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제보자’는 1996년 ‘세 친구’로 데뷔한 임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남쪽으로 튀어’(2012) 등에 이어 일곱 번째로 연출한 작품이다. 방송사 시사 프로그램 PD 윤민철(박해일)이 제보자 심민호(유연석)의 도움을 받아 이장환(이경영)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다. “진실을 수호하는 분들에게 바친다”고 한 임 감독을 만나 영화 ‘제보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_처음 ‘제보자’ 연출을 제안 받은 시점은 언제인가.

“2012년 11월쯤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사실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남쪽으로 튀어’ 후반 작업 중이었는데 소재 때문에 거부 반응이 있었다. 상업적인 소재도 아니고 워낙 민감하고 무거운 문제 아닌가. 제작자를 만나고 시나리오를 읽고 나니까 연출을 맡는 게 더 어려울 듯했다. 처음 시나리오는 사건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요약한 것이었는데 굳이 다큐멘터리처럼 재현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_그런데도 영화를 맡은 것은 어떤 점에 끌려서인가.

“초점이 줄기세포가 아니고 언론사 PD와 제보자의 이야기라는 점 때문이었다. 진정한 언론인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제보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현재진행형인 이 문제를 다루면 한국 사회에 메시지를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본격적인 언론 영화는 아니다. 방송국 내부의 얽히고설킨 문제를 다룰 수도 있었지만 줄기세포 문제도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언론에만 초점을 맞출 순 없었다.”

_동물보호시민단체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더 관심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생명공학이라는 게 그 어떤 산업보다 더 확실한 크로스 체크가 필요한 분야인데 한국에는 연구 윤리 자체가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다. 그것도 관심사 중 하나이긴 했다.”

_제목은 제보자이지만 영화는 내부 고발자 심민호(유연석)가 아닌 사건을 취재하는 방송사 PD 윤민철(박해일)의 시선으로 풀어나간다.

“이 영화의 프레임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제보자의 갈등과 번민을 다룰 수도 있고 전지적 시점으로 다룰 수도 있다. 제목은 이중적으로 쓴 거다. 심민호는 내부 고발자인 제보자이고 윤민철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제보자라 할 수 있다.”

_극적인 장치를 더 쓸 수 있었을 텐데 절제한 인상이다.

“장르영화에 차용하기 쉽지 않은 소재다. 모두들 결말을 알고 있지 않나. 현실에선 극적인 사건이 더 많았고 영화에도 더 넣을 수 있었지만 관객을 극단으로 몰고 가서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관객이 거리를 두고 인물들을 바라보며 생각할 여지가 있었으면 했다. 우리 사회를 광적으로 맹신 상태에 몰아 넣었던 핵심과 본질을 조금 담백하게 거리를 두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나 자신이 기질적으로 잘 흥분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런 것도 있다.”

_촬영 당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나 단체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지 않았나.

“영화를 조용히 찍어서 아마도 잘 몰랐을 것이다. 시나리오 보안에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생명공학과 관련한 도움을 받을 때나 촬영 때문에 연구실을 빌려야 할 땐 협조가 쉽지 않았다. 장소를 빌리려 해도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까지도 그분의 영향력이 크다는 걸 실감했다.”

_청춘 스타 유연석을 캐스팅한 것이 주요했다.

“박해일에 비해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급’이 있는 친구여야 했다. 신이 많지 않고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라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1순위였던 배우에게 거절을 당한 뒤 막판에 유연석을 캐스팅했다. 처음엔 너무 어리지 않나 했지만 유연석이 옷이나 안경, 머리모양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배우라서 잘 어울렸다.”

_‘제보자’는 사건을 전하기보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는 영화처럼 보인다.

“당시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못했던 것 같다. 연구를 지휘하는 박사나 연구자들은 논문을 조작해서 연구의 기본 윤리를 져버렸고 동료들도 그가 과학계의 모든 자금을 주무르는 사람이라서 쉽게 비리를 고발하지 못했다. 언론도 사실에 근거한 기사를 써야 하는데 던져주는 사실만 가지고 확인 과정도 없이 기사를 남발했다. 정부나 관료들, 연구 비용을 댄 사람들도 그것을 관리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못했다. 조작된 사실이 국민의 이상한 열망과 만나면서 이상한 신화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굴러가면서 점점 더 힘이 세졌다. 그 사건에 있어선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사회가 무너진다고 표현하면 좀 과장일 수도 있겠지만 기반이 허약하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기고 기초가 흔들렸던 거다. 천천히 하더라도 건강한 담론을 만들어내고 확인했어야 했는데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지 않은 채 대충 결과우선주의로 달려온 한국사회의 문제가 총체적으로 담겨 있던 사건이 아닌가 싶다.”

_왜 이제 와서 이 소재를 다루는지 따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왜 두 번 죽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누군가를 두 번 죽이려는 영화가 아니다. 나는 지금 한국 사회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그 어느 때보다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믿을 수 있는 가치나 진실이 존재하지 않고 서로 간에 불신이 크다. 국민은 정부를 믿지 않고 언론을 믿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각하다. 10년 전의 신드롬엔 어리석건 어리석지 않건 애국주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한국 사회가 지금 위험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그걸 늦추고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 영화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런 걸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_전작인 ‘남쪽으로 뛰어’ 때 연출권 침해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 영화를 연출하며 상처를 치유했을 것 같다.

“제작자가 여러 의미로 고맙다. 처음엔 내게 왜 이렇게 예민한 걸 제안할까 했는데 좋은 기회를 준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전 작품에서 상처도 받고 무척 힘들었는데 이번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즐겁게 작업했다. 내겐 치유를 준 작품이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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