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17개월 남기고 배수진,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친분
KB맨 윤종규 내부신망 두텁고 이동걸 前 신한 부회장도 경력 화려
16일 후보 4명 압축 앞두고 후끈
현직 은행장 신분으로 경쟁사인 KB금융 회장 경선에 뛰어든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 임기 1년 5개월을 남기고 행장직에서 사임하기로 했다. 하 행장은 2001년 한미은행 시절부터 2004년 씨티그룹 인수 후 계속해서 은행장으로만 14년 간 재직해 씨티은행의 상징과 같았던 인물. 그가 30년 이상 몸담은 씨티은행을 예정보다 일찍 떠날 뜻을 밝히며 KB금융 회장 도전의 날을 세우면서 후보가 4명으로 압축되는 16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 4차 회의를 앞두고 KB금융 회장 인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 행장은 최근 씨티은행 이사회에 사의를 표명했으며, 조만간 대직원 메시지 형식으로 사임 의사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예정된 임기는 2016년 3월까지로, 거취의 최종 권한은 이사회와 주주총회가 가진다. 지난 해 하 행장의 공시된 연봉이 28억8,700만원으로 KB금융 회장을 능가하는 수준이었음을 감안하면, 돈보다 명예와 지위에 베팅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 행장의 사의 표명은 KB금융 회장 인선의 큰 변수로 부상했다. 그가 배수의 진을 친 것은 상당한 자신감의 발로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회장직을 낙점 받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하 행장은 씨티은행 부행장을 지낸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두터운 친분이 있으며, 신제윤 금융위원장, 정찬우 부위원장 등 금융당국 인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풍부한 CEO 경력은 그의 강점일 수밖에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7명의 후보 중 유일하게 은행장을 해 본 사람”이라며 “은행장을 리드할 지주사 회장을 뽑는 일인 만큼 은행장 업무를 잘 이해하는 하 행장에게 유리한 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KB금융 노조의 반발을 등에 업고 외부인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강해질 경우 결국 내부인사에게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의 사퇴로 남아있는 내부 인사는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등 4명. 이중 윤 전 부사장의 경우 KB금융 재직 기간이 7년으로 가장 길고, 내부 신망이 두텁다는 점에서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통합국민은행 출범 이후 영입된 인물이어서 어느 채널(옛 국민은행 및 주택은행)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점이다. 이에 따라 지금의 구도가 ‘하영구-윤종규 2파전’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게 나온다.
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역시 여전히 강력한 후보인 것은 분명하다. 신한금융에서 은행과 증권, 캐피털 등 다양한 계열사 경영 경험을 쌓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반면 2012년 대선 때 금융인들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이끌어낸 것은 강점인 동시에 약점으로 작용한다. 현 후보군 중에서 낙하산 논란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인물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이밖에 양승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장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유력 후보군에서는 살짝 비껴있는 듯한 모습이다.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결국 KB금융 회장 인선은 고위층의 입김이 작용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싸움이 될 것 같다”며 “아무리 회추위가 독립적으로 활동한다고 해도 벌써부터 외부 입김이 상당하다는 얘기가 파다해서 누가 되더라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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