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 당사자와 링크돼 있는 불특정 다수까지 감시 대상으로
사정당국 SNS 사찰 속속 사실로… 경찰, 유병언 수사 때도 조회 논란
박근혜정부 들어 사정당국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무분별한 압수수색으로 국민의 사생활과 개인정보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는 논란이 국정감사를 통해 속속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정부의 ‘사이버 사찰’ 논란이 단순히 시민단체나 야당의 정치 공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개연성을 갖춘 문제제기로 드러나면서 개인정보 침해와 표현의 자유 위축 등 시민 불안감이 계속 확산되는 분위기다.
13일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찰청,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는 사이버 사찰 문제가 단연 관심사였다. 이날 경찰청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공개한 ‘네이버 밴드’ 사찰 의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검열 당사자뿐 아니라 수많은 불특정 다수까지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 의원은 “경찰이 A씨와 링크돼 있는 동창들의 휴대폰 번호, 주민등록번호까지 다 검열하겠다는 얘기”라며 “이러니 경찰청이 사찰청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과정에서 국민들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이용 정보를 조회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정 의원은 이날 경찰이 지난 7월 SK플래닛(T맵), KT(올레맵, 올레내비) 등 6개 내비게이션 서비스 제공 업체에 유씨의 은닉 장소로 추정된 전남 송치재 일대 지명을 입력한 모든 사람들의 위치정보를 요구한 사실을 공개하며 과잉수사를 질타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두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367대의 휴대폰 번호를 조회한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수사상 필요에 의해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도 이를 인정해 발부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같은 당 임수경 의원은 “최근 논란이 된 카카오톡 압수수색은 특정 기간을 설정해 상대방의 아이디와 전화번호가 포함되는 등 너무 포괄적이라 민간인 사찰로 봐야 한다”며 경찰에 영장 원본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카카오톡과 이메일 등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경찰의 무분별한 압수수색은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이명박정부 마지막 해인 2012년 681건에 불과했던 전기통신 압수수색 영장 집행 건수는 올 들어 8월까지만 해도 1,240건에 달할 정도로 급증했다.
법무부 국감에서도 카카오톡 압수수색에 따른 ‘사이버 망명’ 현상이 도마에 올랐다. 새정치연합 임내현 의원은 “통신감청이 불가능한 해외 프로그램 텔레그램에 한국인만 150만명이 가입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며 “무분별한 통신감청이 사생활 침해는 물론 토종기업(카카오톡)의 명운까지 갈라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전해철 의원은 최근 검찰이 박 대통령 모독을 이유로 포털 3사를 불러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연 것에 대해 “검찰이 (사이버사찰 전담팀) 자료를 내면서 ‘실시간 모니터링 및 업무체계 구축, 허위사실 유포사범 등 상시 적발’ 이라고 하니 국민이 불안해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저는 지금도 카카오톡을 쓰고 있고, 외국 텔레그램을 쓰고 있지 않다. (압수수색 대상자인) 정진우씨에 대해서는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수사가 이뤄졌다”고 항변했다.
미방위 국감에서도 주무부처인 미래부가 사이버 사찰 문제에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새정치연합 전병헌 의원은 “지금 네티즌 사이에서는 감청과 사찰 공포로 국민감시공화국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주무 장관이 너무 나이브(naiveㆍ순진)하게 생각하고 있어 한심하다”며 최양희 장관을 몰아세웠다.
사정당국의 광범위한 사찰 정황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증권업계 종사자 정모(29)씨는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빅 브러더’가 떠오른다”며 “정치적 활동도 아닌데 개인의 대소사까지 들여다보겠다는 발상은 헌법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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