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을 막기 위한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 정책이 세입자 주거여건 악화 부작용을 키우고 있는 현실이 잇달아 확인되고 있다. 요컨대 주택 가격을 지지하기 위한 부담을 고스란히 집 없는 서민 세입자들이 짊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원석 의원(정의당)이 어제 금융감독원을 통해 파악한 데 따르면 올해 1~8월 전세자금대출 신규취급액은 월평균 1조3,000억원을 기록, 누적 총액이 10조4,000억원에 달했다.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11년 월평균 전세자금대출 신규취급액이 7,500억원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3년 새 5,000억원이나 증가한 셈이다. 대출 잔액도 5년 전인 2010년 12조8,000억원에서 올 8월말 현재 32조8,000억원으로 20조원이나 늘었다.
전세대출이 급증한 배경은 명확하다. 지난해 이래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가계자산 디플레이션이 야기할 거시경제의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집값 지지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ㆍ총부채상환비율(DTI) 대출 규제를 완화해 주택 구입자금을 풀고, 주택 임대의 월세 전환을 적극 유도함으로써 주택 보유자들에게 은행 대출금리를 웃도는 임대소득을 보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왔다. 정부는 이런 정책을 통해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집을 한 채 더 사서 임대사업을 하든, 무주택자가 비싼 월세 주느니 대출 받아 집을 사든 주택 구입 수요를 늘림으로써 집값 하락을 막자는 것이었다.
정부의 시도는 일단 재건축이나 기존 주택 매매를 자극해 어느 정도 부동산경기 회복 효과를 낸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세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전셋값이 거칠 것 없이 치솟았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지난 9월까지 19개월 간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 상승률은 2.8%인 반면, 전셋값은 15.9%나 급등했다. 이 때문에 집 없는 서민들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전세대출을 늘려 오른 전셋값을 감당해야 하는 악순환이 빚어진 것이다.
정부는 지금도 오르는 전셋값이 불만인 세입자들이 대출 규제완화에 힘 입어 활발하게 주택 구입에 나서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재건축 약발’을 제외하곤 다시 원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최근 부동산시장의 상황을 감안할 때 그런 기대는 타당하지 않다. 전셋값 상승을 방치함으로써 주택 매매 수요를 촉진하려던 정책 의도가 한계에 이른 만큼, 이젠 세입자들의 과도한 부담을 완화할 부동산정책 보완이 시급하다. 정부는 “가계소득마저 정체된 가운데 전세가격이 급등해 세입자 가계는 나날이 늘어나는 빚의 수렁에 빠지고 있다”는 박 의원의 지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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