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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할머니 투자자님! 죄송합니다.

입력
2014.10.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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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던 어느 날 연구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연배가 있게 느껴지는 점잖으신 할머니 목소리였다. 필자가 그 동안 본지에 기고한 글들을 봐왔고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하셨다고 말을 꺼내시며 본인은 73세이고 바깥어른은 79세라고 소개를 하셨다. 너무 답답해서 하소연이라도 할까 해서 전화를 했다고 자초지종을 말씀하셨다.

내용은 이렇다. 시중 모 은행을 거래하며 알게 된 직원이 증권사로 이직을 하면서 투자권유를 한 모양이다. 할머니 표현을 빌리면 ‘하도 도와달라고 사정해서’ 할아버지의 은퇴자금으로 마련해 둔 2억원을 맡겼는데 투자손실이 발생해서 그 돈이 절반도 남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내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벌써 할 수 있는 것은 다해 보셨고 금융회사 잘못이 없다고 결론이 나서 소송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고 들으셨단다. 감독당국에서는 증권사가 영업을 하는데 준수해야 하는 모범규준에 따라 영업을 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투자상품의 위험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했고 할머니도 설명을 들으시고 이해하셨다고 동의를 하신 녹취가 있어서 증권사의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여기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셨다. 금융사에 불리한 이야기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해서 녹음이 안 되었는데 그런 것은 모두 무시하고 기록이 없다며 녹취된 내용만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할아버지는 너무 억울한 나머지 몸져 누우시고 할머니가 백방으로 방법을 찾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나의 평소 지론은 ‘누구든지 자신의 의무를 다한 자만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온 터라 할머니께도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투자라고 하는 것은 위험이 있는 것이고 투자의사결정의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다”고 원론적인 말씀을 드렸다. 말씀을 드리면서도 너무 조심스러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하셨을 텐데 위로는 못할망정 이런 이야기나 하고 있으니 화라도 내실 법 한데 할머니는 본인의 책임도 있다고 인정을 하신다. 그리고 손실을 모두 보전해 달라는 것도 아니시란다. 단지 할머니와 같은 연세에 또 은퇴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그런 위험한 상품에 투자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이야기이시다. 천 번을 양보하더라고 맞는 말씀이다. 우리는 금전적인 이익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이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진 것이 얼마이든지 배움이 얼마이든지 혹은 삶의 연륜이 어느 정도인지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일 것이다. 그래서 금융정책당국에서는 고객알기제도(Know Your Customer Rule)라는 것을 마련하고 금융투자회사가 이 제도에 따라 투자목적, 재산상태, 투자경험 등의 투자자 특성에 맞는 투자를 권유하거나, 적합하지 않는 투자를 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바로 할머니와 같은 분께는 비록 고수익이 발생한다고 할지라도 높은 위험을 가진 투자상품을 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미 고령이 되신 분의 노후자금은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운용 원칙일 텐데 이런 고령은퇴자들에게 주식형 펀드나 파생금융상품의 가입을 권유하는 것은 투자자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투자권유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런 분들께 투자상품 가입과 관련된 설명의 의무를 다했다고 해서 부적합한 성품을 권유한 책임을 벗을 수 있을까? 한 지방저축은행과 모 증권사의 불완전판매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부적합한 투자권유가 금융시장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평생을 힘들게 일해 모으신 노인 분들의 노후자금을 보태드리지는 못할망정 금융회사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축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할머니의 전화로 무거워진 마음에 갑자기 아직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법안들을 몇 년 째 붙들고 있는 국회가 원망스러워진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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