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가디언, 시에라리온 13세 소녀 눈에 비친 끔찍한 비극 전해

배탈로 감염 오인받을까봐 배급으로 받은 밀 안 먹고

격리된 마을에 갇혀 불안에 떨어

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수술용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스페인 정부의 미숙한 에볼라 대응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마드리드=로이터 연합뉴스

13세 소녀 빈투 사노는 시에라리온 제3의 도시 케네마에 산다. 그는 최근 에볼라가 가져온 처참한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뒤덮은 어른들이 집에 들어와 집기를 꺼내 불태우는 광경은 공포스러웠고, 친구가 내미는 손을 만지기도 두려웠다. “이모 등과 함께 가난하게 살면서도 행복했던” 그는 “에볼라가 우리 가족을 파괴했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는 1면에 에볼라에 행복을 빼앗긴 사노의 눈을 통해 에볼라가 빚은 끔찍한 비극을 전했다.

에볼라가 처음 우리나라에서 발병했을 때, 우리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역 단체와 비정부기구(NGO)가 에볼라를 두고 하는 말이 많아지면서 민감해졌다. 사람들은 에볼라의 위험성을 믿지 않았고, 내가 사는 케네마(수도 프리타운에서 동남쪽 185㎞ 위치)에서는 ‘에볼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와 함께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에볼라가 야당의 기반인 동부에서 주로 발생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정부가 에볼라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의사가 피를 원해서 발병한다’는 터무니 없는 말도 나왔다. 너무나 많은 얘기가 떠돌아 오히려 아무도 에볼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8월 초 상황은 바뀌었다. 정부가 라이베리아와 인접한 카일라훈(케네마 북서쪽 80㎞ 위치)과 케네마 지역에 이동금지령을 내렸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시장에 가서 싼 값에 음식과 물건을 사 오던 이모도 아무데도 갈 수 없었다.

에볼라가 우리 마을에서도 발병하자 상황은 훨씬 악화했다. 한 약사는 몸이 아팠는데 “패혈성 궤양”이라면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의학 지식을 더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의료인의 말이라서 약사를 믿었다. 평상시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약사와 접촉했다. 약사가 사망했을 땐 관습에 따라 그의 시신을 씻어 매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약사는 에볼라를 앓았던 것으로 병원에서 확인됐다. 약 2주 후 그와 접촉했던 몇몇 사람과 시신을 세척했던 사람들이 앓기 시작했다. 마을 대표도 무서워서 구급차를 불렀고, 세 사람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구급차 소리는 우리를 겁먹게 했다. 특히, 나 같은 어린이가 무서워했고,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을 것”이라는 공포가 마을 전체를 집어삼켰다. 병원으로 실려간 이들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이모를 포함한 16명도 아파 검사를 받았는데 에볼라 양성 반응을 보였다. 우리와 함께 사는 한 살 위의 언니 마리와 이모만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에볼라 고아’가 될 뻔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2주도 안 돼 다섯 가정에서 17명이 사망했고, 9명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온통 하얀 옷을 입은 병원 사람들이 우리 집에 들어와 매트리스 및 침구를 꺼내 불 태우고, 거실과 침실에도 뭔가를 스프레이로 뿌렸다. 이들은 에볼라 사망자나 감염자가 있는 집을 방문해 똑같이 하는 것을 나는 울면서 지켜봤다. 정말 무서웠다.

우리 마을은 다른 마을과 격리돼 아무도 21일간 마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군인과 경찰도 마을을 에워쌌다. 먹을 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몰래 빠져나가려다 군경에 막혀 돌아오곤 했다. 퇴원한 이모도 너무 쇠약해 음식을 준비할 수 없어 우리는 매우 굶주렸다. 첫 2주는 아무도 먹을 것과 물을 주지 않았다. 셋째 주에 자선단체가 반쯤 삶아 말려 빻은 밀, 기름, 콩을 나눠줬지만 우리는 배탈날까 걱정돼 밀을 안 먹었다. 배탈나면 경찰이 에볼라 감염으로 알고 데려갈 것 같았다. 이모가 다른 종류의 밀을 확보했다. 이모가 500레온(한화 약 300원)이면 세 사람이 한끼를 해결할 정도인 밀 한 컵을 사왔다.

930명(세계보건기구 집계)이 사망한 지금도 사람들의 에볼라 인식에 문제가 있다. 조금 전 친구 2명은 삼촌이 에볼라에 걸렸을 때 집에서 어떻게 돌봤는지 얘기해줬다. 염소로 소독된 물로 손을 잘 씻지 않는 친구들이 나와 놀고 싶어할 때면 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우리 마을에는 어린이 100여명이 고아가 됐다.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어떻게 생존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도 학교에 돌아갈 수 있을까. 에볼라가 우리 목숨을 앗아가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전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아마 고난과 배고픔이 우리를 쓰러뜨릴 것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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