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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위폐를 바꿔 주는 은행

입력
2014.10.1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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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한은행의 에이스 고객이다. 입사 이래 22년간 단골로 회사 월급 통장과 신용카드를 이용하며 한 번도 대출이자 연체 없이 금융거래를 해왔다. 그러다 보니 타 은행 송금이체 무료서비스는 물론 환전시 환율우대를 받는 은행이 선정한 '탑스 클럽' 점수 1,200점 이상의 착한 고객이 됐다.

지난달 말 중국 베이징으로 출장을 가게 돼 김포공항 신한은행 지점을 찾았다. 이른 아침에도 중국인 관광객들로 창구는 붐볐고, 한 참을 기다려 출장비를 런민비 100위안(1만7,500원)짜리로 모두 환전했다. 3년간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하고 서울로 돌아온 지 3년 만에 처음 베이징을 다시 찾는다는 큰 기대감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출장 이틀째 되는 날 취재를 마치고 오랜만에 지인들과 만나 특파원 시절 즐겨 찾던 한 중국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서로가 식사비를 내겠다고 옥신각신하다 결국 저녁은 내가 사고, 2차는 지인들이 사기로 했다. 식당 카운터 앞에서 서울서 환전하며 받은 신한은행 봉투에서 100위안짜리 9장을 꺼냈다. 중국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는 것이 꺼림칙해 현금을 내기로 한 것이다.

카운터의 50대 중년 여성은 내가 건넨 돈을 위폐감별기능이 있는 현금계수기에 넣어 돌렸다. 하지만 100위안짜리 2장이 계수기를 통과하지 않았다. 다시 계수기에 넣어 확인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는 돈을 빛에 비춰보고 손으로 만져본 후 위조지폐라며 안쓰럽다는 듯 내 앞에 내놓았다. 나는 그럴 리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직접 만져보고 꼼꼼히 보니 색감과 종이질도 다른 위폐가 분명했다. 한마디로 큰 충격이었다. 중국에서 거스름 돈으로 받은 것도 아니고 은행서 환전해온 돈이 위폐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중국 식당에서도 쉽게 검증되는 위폐를 우리나라 최고의 은행인 신한은행에서 버젓이 고객에게 환전해줬다는 사실 자체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인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다음날 점심식사를 마치고 베이징 한국인 촌인 왕징 신한은행 지점을 찾아갔다. 한국 주재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인 만큼 내가 당한 황당한 경험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줄 것으로 생각해서다. 창구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지점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중국에선 시중은행 ATM 서비스 등에서 위폐가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특파원 시절에도 중국 한 은행에서 현금 서비스로 받은 돈에서 위폐가 발견돼 영수증을 갖고 은행창구에 가 상황설명을 하고 교환 받은 적이 있다. 중국은행들은 위폐에 대해선 엄격하지만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적절하고 융통성 있게 대응한다.

나는 서울서 환전해온 현금 가운데 위폐가 더 있을지 몰라 직원에게 위폐 감별을 요청했다. 그러자 직원은 은행에서 직접 위폐감별을 할 경우 위폐가 발견되는 즉시 규정상 몰수해버린다며 그래도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서울의 신한은행에서 환전해 온 돈을 왕징 신한은행 지점에 위폐감별을 요청했다가 일 순간 몰수당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봐 나는 “그만 됐다”고 말했다. 지점장은 오후 2시가 돼서야 나타났다. 나는 화를 억누르고 서울서 환전할 때 받은 외국환 매도 계산서를 보여주며 다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점장은 죄송하다는 말은 고사하고 잠시 창구 안으로 들어갔다 와 “중국 신한은행은 한국 신한은행과 다른 법인이어서 여기선 해결해 줄 수 없다. 서울로 돌아가 해당지점에서 직접 상의하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오후 취재 일정으로 따질 틈도 없어 그냥 은행 문을 박차고 나왔다.

연말이면 중국 방한객이 연간 600만 명을 돌파한다고 한다. 이들이 국내서 쏟아내는 중국 위안화 중 위폐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7개 시중은행에서 1만6,870위안, 올해 1~7월 9,765위안의 위폐가 발견됐다. 공항지점 창구 직원의 말은 위폐 해프닝의 완결 판이다. “우리은행에선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이번은 바꿔 드리지만 앞으론 환전하시면 직접 확인하셔야 합니다.” 신뢰가 생명이어야 할 은행에서, 다른 은행도 아니고 국내 최고로 평가 받는 은행에서, 환전 받은 돈을 고객이 일일이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 한국 금융의 현실이라면 차라리 중국은행으로 계좌를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참으로 황당하고 불쾌할 따름이다.

장학만 산업부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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