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에서 총소리가 나 8ㆍ18 때처럼 피난 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경기 연천 일대에서 민간단체가 띄운 대북전단을 놓고 남북이 총격전을 주고 받은 10일 민간인출입통제선 내 경기 연천군 중면 횡산리 주민들은 ‘8ㆍ18 도끼만행 사건’때 악몽을 떠올리며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 경험을 했다. 이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2명을 북한 경비병들이 도끼와 곡괭이 등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횡산리 이장 김학용(60)씨는 “이곳은 이북과 인접해 우리 군도 평소 총을 쏘는 훈련은 잘 하지 않는다”며 “결국 전쟁이 터지나 싶었다”고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김씨와 연천군 등에 따르면 횡산리에 총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 건 이날 오후 3시 55분쯤. 북한이 총격을 가한 것으로 확인한 군은 2시간쯤 뒤인 오후 5시 45분쯤 곧바로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김씨가 직접 마을회관에서 방송을 했고 15여분 만인 오후 6시쯤 주민 20여명이 옷가지만 챙겨 입고 허겁지겁 ‘횡산리 대피소’에 모였다. 김씨는 “주민 60여명 대부분이 60~70대 노인이어서 10여명은 아예 집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고 나머지는 마을을 벗어나 외출 중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이날 다친 주민은 없다”고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날 주민들이 방송을 듣고 모인 지하 대피소는 4년여 전인 2011년 연평도 포격 뒤 3억8,400만원을 들여 지었으며 128㎡ 크기로 89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연천군은 화장실과 난방기, 방독면, 비상식량, 구급함, 급수시설, 발전기 등을 갖춰 국지도발 때 10시간 가량 머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대기하던 주민들은 북한의 이상징후가 더 없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자 1시간 30분 만에 연천군과 군의 인솔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천군은 빵과 우유, 컵라면 각 60개씩을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김씨는 “저녁 9시쯤 진돗개 하나 발령이 해제돼 주민들에게도 귀가 허락이 떨어졌다”며 “일부는 바로 집으로 갔고 나머지는 마을회관에서 TV뉴스를 보며 상황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유명식 기자 gij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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