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포 조종수 출신 견인포 배치 등 21개월 군 복무와 무관한 임무
생소한 장비 다루다 사고 위험에 "신병보다 전력 떨어질 수도"
6일 예비군 동원훈련이 실시된 경기 고양시의 한 군부대 훈련장. 105mm 구형 견인포(M114A1ㆍ트럭에 견인해서 이동하는 포) 3문 뒤로 각 포반에 배치된 예비군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5명으로 구성된 한 포반의 경우 각자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한 예비군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견인포로 훈련한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사격통제관이 수신호로 하달한 수치에 따라 손잡이를 돌려 포신의 상하 각도를 맞추는 부사수 역할은 자주포(탱크의 무한궤도와 같은 이동 장치를 갖추고 있어 기동력이 우수한 포) 조종수 출신 김모(26) 예비역 병장이 맡았다. 군 생활 내내 자주포 운전만 했던 김 병장은 수신호를 이해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포신을 어떻게 올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역시 조종수 출신인 다른 병장은 포신의 방향을 맞출 때 기준이 되는 겨냥틀을 설치하지 못해 안내 병사가 임무를 대신했다. 이들은 자주포에는 없는 견인포의 가신(포 다리)에 해머로 쇠말뚝을 박는 다소 위험한 작업에 진땀을 빼야 했다.
이날 예비군들은 열 번이 넘는 방열(사격 전 목표지점을 향해 포를 고정시키는 것) 훈련 중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들이 낸 방열 오차는 6~10㎜로, 10㎞ 떨어진 목표물을 향해 사격하면 포탄이 명중 지점에서 60~100m나 벗어나게 된다. 훈련은 2박3일간 계속됐지만 마지막 날까지 예비군들은 임무를 숙지하지 못했다.
군 복무시절 갈고 닦은 주특기가 아닌 새로운 주특기로 훈련을 받는 예비군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병무청 동원관리과에 따르면 예비군이 자신의 주특기 그대로 동원훈련을 받는 경우는 대략 70%에 불과하다. 포병의 경우는 더욱 심해 겨우 절반 정도만 주특기 대로 훈련을 받고 있다.
전시나 전시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고작 며칠간 새로 훈련 받은 주특기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예비군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다. 현 제도로는 예비군들의 전투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미세한 충격에도 폭발할 수 있는 뇌관과 포탄 등을 다루는 포병은 작은 실수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은 병무청의 ‘병력동원 및 전시근로소집규정’ 때문이다. 동원 예비군은 일단 거주지를 기준으로 가까운 부대에 배치된 후 주특기를 고려해 임무가 부여된다. 주특기보다는 거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에 일선 부대에서 필요한 주특기별 병력과 실제 배치되는 예비군 수에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문제점은 관계 당국도 알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예비군이 자신의 주특기를 잊지 않게 재훈련 하는 것이 동원훈련의 목적이고, 훈련 때 자신의 주특기를 벗어나 생소한 장비를 다루는 것은 위험성이 있다”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최대한 자신의 주특기에 따라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도 현실적으로 해당 예비군 사단의 병력 수요와 조화를 이루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상상황 발생 시 예비군들이 부대까지 이동해야 할 거리와 주특기를 적절하게 안배해주는 방향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동원 예비군의 주특기가 세분화되지 않는다면 21개월 이상 군생활로 숙련된 전력을 발휘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신병보다 못할 수 있다”며 “예비군 역시 실전에 대비한 집단인 만큼 주특기를 살려 훈련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형직기자 hj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