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에서 한 남자가 한참 동안 어슬렁대고 있었다. 겁이 났지만 이대로는 잠들지도 못할 것 같아 외투를 입고 밖으로 나갔다. 남자는 꿍꿍이가 있다기보다는 절박함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뭣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고 이 근처를 서성이고 있어요?” “저기 그게…… 조깅을 하다 휴대폰을 잃어버렸어요.” 남자의 대답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서 휴대폰을 잃어버리셨나요?” 혹시라도 취조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나는 곧바로 고쳐 물었다. “이 근처에서 휴대폰을 떨어뜨리신 거예요?” “아뇨, 휴대폰을 잃어버린 곳은 저쪽인 것 같아요.” 남자가 가리킨 곳은 골목 저편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휴대폰을 찾고 있었어요?” 내가 놀라서 묻자, 남자는 태연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기는 너무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시름 쌓인 그의 얼굴에 대고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한번 같이 찾아보지요.” 급한 대로 휴대폰 조명을 켜고 남자와 함께 골목을 돌았다. 흡사 탐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십여 분이 흘렀을까. 골목 끄트머리 가로등 아래에 미확인 물체가 있는 게 보였다. “저기 있네요!” 내가 소리치자 남자가 달려가 휴대폰을 날렵하게 낚아챘다. 방금 전의 흐리멍덩한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등잔 밑이 진짜 어둡긴 어둡군요.” 내 말에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밤이 잠시 환해졌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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