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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가 헬기에 오를 때, 들뜬 음악은 관객도 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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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가 헬기에 오를 때, 들뜬 음악은 관객도 띄우고…

입력
2014.10.1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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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어렸을 때 답은 무조건 바다였다. 동해의 큰 파도가 좋고 서해의 낙조가 좋았다. 어차피 금방 내려올 산에 사람들이 왜 고생해서 오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30대가 막을 내릴 때쯤 산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엊그제 휴일에도 뒤늦은 시각에 산행에 나섰다. 배낭에 맥주 한 캔 들고 물도 없이 헉헉거리며 산에 오르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등산을 좋아하게 된 걸까.’

날씨를 즐기려고 온 걸까, 건강을 위해 운동 삼아 온 걸까. 아니면 맥주를 맛있게 마시려고 온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전한 위험’과 ‘쉬운 어려움’을 즐기며 소심하게 ‘나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위안하려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날씨만 즐기고 싶다면 굳이 정상에 오를 필요가 없고 건강을 위해서라면 술을 마실 이유가 없다. 인생에서 부딪혀야 할 ‘위험한 위험’과 ‘어려운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유사 행위로 자신을 속이는 행동인 것이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주인공 월터 미티(벤 스틸러)도 비슷한 사람이었나 보다. 특별히 가본 곳도 해본 것도 없는 사람. 남들 다 가는 여행지에 다녀오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이한 취미를 즐기며 살아온 월터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러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 현장으로 뛰어들고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히말라야 산맥에 오른 뒤 대자연의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한다.

“일단 떠나라”고 말하는 항공사 광고의 2시간짜리 확장판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나른한 일상에 달콤한 자극을 준다. 월터가 짐을 싸 들고 아이슬란드로 히말라야로 갑작스럽게 떠나는 두 장면은 아찔할 만큼 유혹적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초원과 히말라야의 아찔한 능선이 아닐까 착각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이 흑백사진 속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이리로 오라고 할 땐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 월터와 함께 비행기에 타고 싶어진다.

영화에 쓰인 다양한 음악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흥행을 도운 여러 요인 중 하나다. 여행의 설레는 에너지를 극대화하는 음악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했다. 월터가 아이슬란드로 향하는 장면에선 캐나다 인디 록 밴드 아케이드 파이어의 ‘웨이크 업’이 어서 일어나라며 관객의 들뜬 마음을 선동한다. 숀이 월터에게 선물한 지갑에 쓰인 문구가 하나씩 배경에 깔릴 때 영화는 장벽 너머의 세상을 만나고 느끼라고 재촉한다. 활주로에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다’이라는 글이 지나갈 땐 나도 모르게 인생의 목적지에 아이슬란드를 포함시키게 된다.

월터가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초원 위의 도로를 자전거로 달릴 때 흘러 나오는 오브 몬스터스 앤 멘의 ‘더티 포스’,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질주할 때 들리는 유닙의 ‘파 어웨이’, 히말라야를 오를 때 나오는 로그 웨이브의 ‘레이크 미시건’ 등의 선곡도 탁월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압도적인 노래는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일 것이다. 보위가 1969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난 뒤 가상의 우주비행사 톰 소령과 지상관제탑 간의 교신 내용으로 쓴 이 노래는 월터가 아이슬란드에서 헬리콥터에 탑승하는 장면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특히 월터가 느린 동작으로 헬기에 오르는 장면의 편집은 음악의 구성과 완벽하게 호흡한다. 우주 미아가 되는 노래 속 화자와 위험을 무릅쓰고 헬기에 타는 월터의 심정도 절묘하게 포개진다.

월터의 상상은 정말 현실이 됐지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아이슬란드 바다에선 익사하기도 전에 쇼크사로 죽을지 모르고, 아프가니스탄에선 히말라야 근처도 못 가보고 비명횡사할 수 있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돌아오면 현실이 상상보다 더 무섭게 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안전한 현실에 순응해 살기엔 짧은 인생이 너무 아깝다. 아이슬란드나 히말라야처럼 낭만적인 곳이 아니면 어떤가. ‘스페이스 오디티’의 우주 비행처럼 황당무계한 상상일 필요도 없다. 세상은 넓고, 갈 곳도 할 일도 많으니까.

고경석기자 kave@hk.co.kr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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