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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든 한국 사회… 등산복 컬러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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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힘든 한국 사회… 등산복 컬러를 바꾸다

입력
2014.10.1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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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원색서 카키·버건디 등 자연스럽고 절제된 컬러 대세

내적 충실 기하는 사회 흐름에 젊은층 소비 증가도 영향

색은 사람 마음을 드러내는 지표, 나에게 맞는 색이 정신건강 도움

가을이 깊어가면서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전국의 명산은 주말마다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등산객들 입에서 “오매 단풍 들었네”라는 탄성이 절로 터진다. 통계에 따르면 한 달에 한번 이상 산을 찾는 사람은 1991년 1,000만 명에서 지난해 2,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20여 년 만에 2배나 늘어났다. 아웃도어 시장도 2011년 4조원에서 올해 8조원을 덩달아 급성장했다.

● 화려한 원색 대신, 카키·버건디 등 톤다운 컬러 대세

불황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누리고 있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새로운 아웃도어룩을 선보였다. 빨강, 노랑, 검정 등 기존의 강렬하고 화려한 원색을 탈피해 카키, 버건디, 네이비 블루, 멜란지 그레이 등 채도가 낮은 색깔을 내놓은 점이 흥미롭다. 밀레, 노스케이프 등 아웃도어브랜드 관계자들은 “천편일률적인 등산복 시장에 싫증을 느낀 젊은 소비자가 늘면서 아웃도어 시장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등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야외활동을 즐기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게 아웃도어가 라이프스타일 패션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등 최근 사회적 분위기도 반영됐다”고 했다.

원색 위주의 색깔이 주도했던 아웃도어에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뭘까. 정찬승 마음드림의원 원장은 “심리학적으로 색깔은 사람의 감정을 드러낸다”며 “남들에게 과시하고 뭔가를 보여줘야 했던 우리사회가 내면을 중시하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다는 징조”라고 설명했다. 정 원장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 것은 자아보다 더 큰 ‘참나’를 찾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는 “정신분석학적으로 산은 거대한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존재와 같아 사람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산에 올랐다”며 “경쟁이 심화되고 세월호 참사처럼 우울한 사건이 많이 발생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외적인 것보다 내적 충실을 기하려 하는 경향이 아웃도어 컬러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 그는 “평소 타인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정서적으로 활달했던 사람이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말이 없어지는 것처럼 사회도 지나치게 외향화되면 한계에 도달해 변화를 모색한다”며 “2, 3년 전부터 자기계발보다 자기성숙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 자연·심신회복 등 중도적 색채…사회분위기 반영

그렇다면 아웃도어를 선도할 색깔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박연선 홍익대 조형대 교수(한국색채학회 고문)는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출시한 올 가을, 겨울 컬러들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세련된 중간 컬러”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선 카키색은 나무와 풀 등 자연색으로 몸이 편안하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박 교수는 “앉아서 일을 하는 직업인들과 깊은 생각이 필요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색으로 조화와 감정의 균형을 잡아준다”고 했다. 카키는 힌두어인 '카키(khaki)'에서 유래된 광물염료로 인도어로 진흙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찬승 원장은 “카키색은 대표적인 자연의 색”이라며 “어머니와 같이 포근한 색으로 부담이 없고 차분함을 주는 내적인 색”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버건디 지방에서 생산되는 붉은 포도주 색인 버건디는 따뜻하고, 감각적이며 진취적인 색으로 기분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또 에너지와 활기를 상징하는 색으로 우울증 치료를 돕고 활동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한다. 박 교수는 “연한 버건디 컬러는 여성스럽고 부드러우며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설명했다.

19세기 초 영국 수병의 푸른 제복 색깔을 나타내는 네이비 블루는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심신의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운동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는데 효능이 있어 불면증치료에 사용되기도 한다. 박 교수는 “명상, 사고 등 집중력과 지적인 활동을 요하는 장소에 적합한 색”이라고 했다. 정찬승 원장은 “푸른 색은 사고기능이 발달한 사람이 선호하는 색으로 특히 지적인 여성이 좋아하는 색”이라며 “감정을 조절하고 명상에 도움이 되는 색”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어인 ‘멜란쥬'에서 유래된 멜란지는 색깔이 섞인 느낌을 주는 색이다. 주로 직물에 쓰이는데 흰색과 회색이 섞인 혼합물 느낌의 회색을 멜란지 그레이라 부른다. 박 교수는 “회색은 지적, 지식, 현명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지속적이고 고전적이며 세련된 이미지를 대표한다”고 했다. 정찬승 원장은 “모든 색을 다 섞으면 회색이 되기에 고대인들은 회색을 색으로 보지 않고 바탕으로 여겨 기원 후 800년이 지나서 비로소 색깔로 인정받은 것이 회색”이라며 “회색은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자기를 통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내적인 색”이라고 했다. 또 정 원장은 “평소 굉장히 명철하고 모든 것이 완벽하게 처리돼야 직성이 풀리는 지인이 있었는데 꿈에서 회색을 본 후 극단적인 생활패턴을 버렸다”며 “회색은 심리적 극단을 거부하는 중용과 관조의 색”이라고 강조했다.

원색이 대세였던 아웃도어룩이 카키, 버건디 등 채도가 낮은 색깔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신과의사들은 “경쟁이 심화하고 세월호 참사처럼 우울한 사건이 많이 생기면서 내적 충실을 기하려는 사회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밀레 제공
원색이 대세였던 아웃도어룩이 카키, 버건디 등 채도가 낮은 색깔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신과의사들은 “경쟁이 심화하고 세월호 참사처럼 우울한 사건이 많이 생기면서 내적 충실을 기하려는 사회분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밀레 제공

● 색깔, 심리 표현…가족, 지인 심리상태 파악 도움

아웃도어 색깔의 변화와 관련,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웃도어 색깔이 바뀐 것은 산업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내적 성찰을 원하는 소비자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에 내몰릴수록 더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정찬승 원장은 “어떤 색의 옷을 입던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에게 맞는 색을 선택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며 “색은 사람의 심리를 가장 잘 드러내므로 가족과 지인들의 현재 심리상태를 살피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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