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체온 치료법의 진화
체온 34도가량으로 낮춰 생체활동 느려지며 긴 잠
中, 기면상태 14일 유지 성공
많이 자고 근무는 최소화
신체ㆍ정신적 부담 줄이고 우주선 공간 활용도 높여
우주선이 어둡고 적막한 우주를 항해한다. 승무원 대부분은 캡슐 모양의 침실 안에 잠들어 있다. 목적지에 도착한 뒤 승무원들은 긴 잠에서 깨어난다. 하루 이틀 정도의 꿈나라 여행이 아니다. 1년이거나 2년 정도 잠을 자며 고단한 여행 길을 견뎌냈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공상과학영화(SF)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SF영화 고전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캡슐형 침실에서 잠을 자는 우주인을 볼 수 있고 세계 역대 최고 흥행 기록을 지닌 할리우드 영화 ‘아바타’에서도 겨울을 보내는 곰처럼 수면을 취하는 등장인물들과 마주할 수 있다.
SF영화에서는 흔한 수면 우주여행이 현실에서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CNN방송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의뢰로 우주탐사연구회사 스페이스웍스가 수면 우주여행에 의한 화성 탐사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최근 보도했다.
스페이스웍스가 추진 중인 수면 우주여행은 영화에서 묘사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주선에 6명이 캡슐형 침실에 탑승한다. 이들은 완전히 잠에 빠져들지 않고 기면 상태로 화성까지 6개월 동안 항해한다. 정맥에 연결된 튜브로 영양분을 흡수한다.
수면 우주여행은 얼마 전까지 현실과는 무관해 보였다. 우주인을 냉동상태로 만들어 우주여행 중 잠이 들도록 한 뒤 깨우는 것은 SF소설과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냉동인간 자체가 이론만 그럴 듯할 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과학계의 지적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저체온 치료법이 각광을 받으면서 수면 우주여행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저체온 치료법은 정신적 외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2000년대 초반부터 적용됐다.
대표적인 수혜자가 자동차 경기 FI의 전설적인 스타였던 미카엘 슈마허다. 슈마허는 지난해 12월 스키를 타다 뇌를 크게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슈마허를 담당한 의료진은 슈마허의 체온을 떨어트려 그의 뇌가 붓는 것을 방지했다. 체온이 떨어져 기면 상태가 되면 생체 활동이 둔화되고 부상 부위의 악화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저체온의 기면 상태는 3,4일 밖에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180일은 족히 걸리는 화성까지의 여행에는 턱 없이 부족한 일수다. 희망을 밝히는 연구 결과가 최근 중국에서 날아왔다. 8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중국의 한 임상연구에 따르면 저체온 기면 상태가 최대 14일까지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4일도 180일에는 비교할 수 없이 짧지만 여러 대안들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스페이스웍스는 우주인들이 14일마다 교대로 깨어났다 잠들었다를 반복하며 서로를 돌봐주면 180일 여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깨어있는 우주인이 3,4일 정도 이메일 전송 등 사무적인 일을 처리하다가 기면 상태가 14일에 임박한 동료를 깨우고 자신은 기면에 들어가는 식이다. 스페이스웍스는 코를 통해 혈액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신체 온도를 섭씨 37도에서 34도 가량으로 낮추면 기면 상태에 돌입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캡슐형 침실은 규칙적으로 회전을 하며 무중력 상태에서 발생하는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근육에 일정한 전기자극을 자동으로 전달하는 장치가 우주인의 몸에 운동효과를 주기도 한다. 스페이스웍스는 저체온 치료법을 활용한 수면 우주여행 연구를 위해 미국 명문의대 존스 홉킨스대와 협업체제를 구축했다.
수면 우주여행의 장점은 여러 가지다. 우주인들이 잠들지 않은 상태로 우주여행을 해도 신체적으로 큰 무리가 가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두운 공간을 장시간 여행하면 정신적 황폐함을 견딜 수 없다. 2010년 러시아 우주국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우주인들이 1년 반에 걸쳐 화성으로 향할 때 심리적 타격이 상당했다. 우주인들은 쓸쓸함에 빠져들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하루 12시간 가량 수면을 취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스페이스웍스의 화성탐사 계획에 따르면 우주인들이 6개월 동안의 여정을 거쳐 척박하기 그지 없는 화성에서 500일 동안 머물며 임무를 수행한다. 우주인들이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뒤 1년 반 넘는 기간 동안 특수 업무를 행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스페이스웍스는 판단하고 있다. 더군다나 임무를 마친 뒤 지구 귀환을 위해 또 다시 6개월 동안 컴컴한 우주를 여행해야 하니 심적 부담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다. 우주인들이 기면 상태로 여행하면 우주선의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다. 돈을 상대적으로 적게 들이면서 보다 많은 사람을 화성에 보낼 수 있다. 화성탐사의 궁극적인 목표인 지구인의 화성 거주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우주여행 방법인 것이다. 스페이스웍스의 존 브래포드 박사는 “우리가 화성의 식민지화를 바라본다면 매년 6~8명 이상을 화성에 보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영화에서 봐왔던 꿈의 여행은 현실에선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 브래포드 박사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그는 “30년 이내에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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