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압박 시달리던 직장 생활 끝내고 사진 찍을 기회 없는 장애인·노인 등
소외계층 전문 사진관 차려 재능기부
"사진 나눔 프랜차이즈처럼 퍼졌으면"
서울 마포구에 있는 ‘바라봄 사진관’은 입구부터가 여느 사진관과 다르다. 나눔 카페 ‘허그 인(hug-in)’ 한 쪽에 있는데, 카페 입구에서 사진관 입구까지 나무로 만든 낮은 경사로가 만들어져 있다. 경사로를 올라가면 다시 반지하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여기엔 철제 경사로가 있어 지체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2012년 문을 연 바라봄 사진관은 장애인, 노인, 다문화 가정 등 소외계층 전문 사진관이다.
밝은 분위기의 손님 응접실은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 공간보다 넓다. 촬영에 익숙하지 않은 장애인들을 배려해 일부러 큼직하게 마련했다. 나종민(51) 대표는 6일 “장애인들은 카메라를 바라보는 것 자체를 꺼리기도 하고 밝은 조명 속에 세우는 일은 더욱 어렵다”며 “촬영 전 20~30분 정도 수다를 떨어 친해진 다음 자연스럽게 표정을 잡아낸다”고 했다.
사실 바라봄 사진관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나 대표도 2007년 은퇴 후 사진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사회공헌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장애인 체육대회 촬영 봉사를 간 것이 단초가 됐다. 장애아를 둔 어머니가 나 대표에게 “장애인들은 사진 찍기가 정말 어렵다”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이후 장애 가족은 물론, “나이가 들어 미워졌다”며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홀몸 노인들, 사진 찍을 기회가 없는 해외 입양아와 다문화 가족 등을 대상으로 한 사진관을 구상했고 2012년 실행에 옮겼다.
나 대표는 21년 동안 IT업계에 종사해온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 분야 전문가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S컴퓨터 영업직을 시작으로 외국계 기업인 M사 국내 지사장과 O사 임원 등을 거쳤다. “솔직히 남들 보다 좋은 조건에서 일했다”던 그가 사진사로 전업하리라고는 자신도 몰랐다. 2007년 모든 것을 내려 놨다.
“매너리즘에 빠졌고 실적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남은 인생을 돈만 벌기 위해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기초생활 수급자인 80대 노모와 60대 소아마비 아들이 함께 사진관에 왔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월 80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받는 어려운 형편인데도 그 보조금의 일부를 떼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함께 찍은 사진을 물려 줄 수 있다며 기뻐하시던 그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 대표는 이 노모의 사진을 따로 찍어 사진관 한 쪽에 걸어뒀다.
바라봄 사진관이 ‘프랜차이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 40년 경력의 광주 H사진관 대표가 바라봄 사진관을 찾아왔다. 나 대표는 ‘나눔 노하우’를 전수했고, 지난 6월부터 H사진관은 장애인 가족 사진관 역할을 겸하고 있다. 대전의 한 목사도 나 대표의 자문을 구한 뒤 지난달부터 저소득층 및 입양 가족 사진 봉사를 시작했다.
“바라봄 사진관 2호점 3호점이 광주와 대전에 생긴 셈이에요. 작은 나눔 활동들이 전국 구석구석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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