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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개헌 논의

입력
2014.10.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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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중심으로 조용하고 깊고 길게

의원내각제 포함해 본격 검토하되

권력구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정치권의 개헌논의가 아연 활기를 띠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6일 “개헌논의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힌 게 직접적 계기다. 박 대통령의 언급은 CBS 노컷뉴스 조사에서 국회의원 231명이 개헌에 찬성인 것으로 드러난 데 대한 것이었다. 개헌 자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당연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그런데도 이를 국회가 당장 개헌논의에 뛰어들어 열띤 논쟁을 벌일 태세인 양 확대 해석한 것이 ‘경제 살리기 골든 타임’ ‘경제 블랙홀’ 등의 과잉 언급을 불렀다 볼 만하다.

이를 ‘공개적 개헌논의 제동’이니 ‘행정부의 부당한 간섭’이니 하고 힘주어 몰아붙이는 것은 실없다. 그 동안 개헌논의의 불씨를 살리느라 애써온 사람들은 애초에 박 대통령의 제동력 밖에 있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개헌 전도사’로 통해온 이재오 의원 등을 생각하면 누구나 그 이치를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을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와 함께 개헌안 제안권자로 규정한 헌법 128조에 비추어 개헌논의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 표명을 ‘부당한 간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여러 차례 고개를 들었다가 탄력을 받지 못해 물 밑으로 가라앉은 개헌논의를 다시 공론의 장에 일으켜 세웠다. ‘기억의 편파성’을 배제하려고 관련기사를 검색하니 한결 확연하다. 현재의 개헌논의 보도에 앞선 관련보도는 지난해 5월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국회에 개헌논의 기구를 두기로 합의했다. 끝내 흐지부지된 이 합의에 앞선 보도는 지난해 2월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과 민주통합당 유인태 의원 주도로 여야 의원 70명이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발족했다는 게 고작이다.

박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정부 개헌논의가 아닌 국회 개헌논의를 행정부가 하라 말라 간섭할 수 없다”며 “정부는 국민투표 과정에서 국민에게 찬반을 얘기할 수 있어도 논의 자체를 막을 수 없다”는 이재오 의원의 반발에서 은근한 반가움의 기색을 느끼는 이유다. 그는 “대통령은 국민이 직선으로 뽑아 외교ㆍ통일ㆍ국방을 담당하고, 국민이 뽑은 국회에서 의석 수에 따라 내각을 구성하자”며 “직선제 5년 단임제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으니 권력을 나눠 소수와 약자도 참여하는 합의적 민주주의를 만드는 게 제2의 민주화 운동”이라고 할 말을 몽땅 쏟아 부었다. 최근 개헌추진 모임 참여 의원이 152명으로 불었으니 그에게는 이보다 더한 기회가 없다.

세월호 정국에서 판정패를 기록한 새정치민주연합에도 좋은 기회다. 문희상 비대위원장과 박지원 의원 등이 교대로 나서서 “세월호 특별법 가이드라인에 이은 개헌 가이드라인 제시는 의회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처사”,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것이 국가개조의 핵심”이라고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국민도 모처럼 개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개헌논의에 반대하기는커녕 박지원 의원의 말처럼 개헌논의에 골든 타임이 있다면 지금이 그때라는 생각이다. 2016년 4월 총선 때까지의 ‘정치 공백’ 때문이다. ‘원 포인트 개헌론’마저 시들해진 마당이어서 국민적 무관심이 큰 걸림돌처럼 보이지만, 그 동안의 개헌논의는 여야, 또는 여야 내부의 정치적 이해 충돌에 걸려 좌초했다. 선거가 없는 20개월을 놓치고 나면 골든 타임을 다시 찾기 힘들다.

다만 이왕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면 진득하고 깊게, 그리고 길게 해야 한다. 권력구조에 대해서는 이미 적잖은 논의 성과가 쌓였다. 2009년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 직속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ㆍ부통령제라는 복수안을 제의한 바 있다. 국회가 이를 바탕으로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어온 바람인 순수 의원내각제까지 포함해서 논의할 수 있길 바란다. 또한 잦은 개헌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고려하면, 개헌논의를 권력구조에 국한해서도 안 된다. 다양한 분야의 현실 변화를 반영, ‘21세기형 헌법’에 담아야 할 내용을 지금부터 폭넓게 논의해 보자.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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