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대하는 촉이 둔해질 때, 사고의 감이 떨어질 때, 반대로 나 홀로 예민한 것처럼 속이 터질 때 일상을 토로하고 흰소리를 늘어놓을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늘 어느 정도의 신뢰를 유지하며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꽤 다행스럽다.
유명 피자의 브랜드와 같은 이름을 가진 독립 잡지 ‘도미노’가 나에게는 그런 것들 중 하나다. ‘도미노(DOMINO)’는 디자이너 김형재와 배민기, 전시공간 ‘커먼센터’의 디렉터이자 영화ㆍ음악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함영준, 밴드 404의 기타ㆍ보컬인 정세현, 자유기고가 노정태, 패션 블로거 박세진, 서로 다른 이력을 가진 6명이 동인이 되어 ‘넓은 의미의 문화적 이슈’를 다루는 비정기 간행물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각종 예술 분야, 사회문제, 여행, 패션, 만화, 정치철학과 국제 정세, 하위문화, 인권 등을 아우르며 그것을 펼치는 방법도 독특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흐르는 공통 정서는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기 불황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도미노의 필자들은 손쉬운 긍정과 힐링을 남발하지 않으며 각자 좁고 깊은 취향과 생업의 늪에서 애써 얻은 지식과 경험, 자료를 동원해 당장의 불편한 문제들을 담담하고 촘촘하게 기술한다. 디자이너인 김형재는 원고를 쓰듯 과감한 편집으로 잡지에 기여하며 개성을 부여하는데 이 또한 도미노가 가진 매력이다.
배민기가 도미노의 창간호에 붙인 글은 이 잡지의 성격을 어림 잡는데 도움이 된다. “어조는 아마 각자의 문화적 계정에 따른 내밀함은 가지고 있으나 부푼 자의식의 음습함은 없이, 격의 없는 ‘수다’와 같은 색채를 띨 것이다. 다만 그 수다는 어떤 쾌활함이라기보다는 ‘그냥 계속 이렇게 살 거랍니다’와 같은 따뜻한 무관심이기도 하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무언가의 ‘전성기’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가능한 이야기를 가능한 재정관리에 기반을 두고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들은 트위터에서 서로의 글을 눈여겨보다가 동료가 됐고 트위터에 회자되는 논쟁거리를 민감하게 포섭하고 독립잡지가 확보하기 힘든 판로 또한 트위터를 이용해 적절하게 개척한다. 첫 호부터 북소사이어티, 유어마인드, 가가린 등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서점을 통해 유통을 해왔고 3호부터는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지난달 발행된 도미노 6호에 실린 ‘도미노 독자인데 음악이 하고 싶다면’이라는 정세현의 글은 음악을 하려는 젊은 세대들이 맞닥뜨리게 될 조건들을 조언의 형식으로 제시하는데 더없이 냉철한 현장비평인 동시에 실제로 현실적인 조언이면서 씁쓸한 다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글에서 제시하는 첫 번째 항목은 ‘음악을 하려면 혼자서 해야 한다.’ 보통의 경우 초기 수입은 10만원을 넘기지 못할 것이고 4인조라도 갖췄다가는 그나마 받게 되는 공연료는 개인이 2만 5,000원. 그것도 많이 잡아서 그렇단다. 합주실 대여나 악기를 써서 믹싱ㆍ마스터링을 해야 하고 온갖 유무형 비용 발생을 감당해야 하는 밴드도 권장사항이 아니고 ‘인디ㆍ록’이나 ‘실험적인’ ‘사운드’ ‘아트’도 하지 않도록 조언한다. 결국 이렇게 유의사항을 제외하다 보면 2014년 현재 음악을 하려면 ‘혼자, 노트북으로, 댄스뮤직을, 취미로 한다’는 결론이 남는다. “한국에는 노력하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중략) ‘잘’하기 위해서 각오, 노력, 수련, 라면만 먹기, 지옥훈련 등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가 매우 힘들고 무엇보다 ‘한’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그만 두는 것이 좋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이 분야는 특히 ‘될놈될-안될안’이다. 당신이 ‘될’이라면 슬슬 해도 좋을 것이고 ‘안’이라면 무슨 수를 써도 구릴 것이다.”
강의실에서 만나게 되는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내가 하게 되는 조언과 별다를 바가 없다. 과도하게 무리하지 말 것. 당장에 결과를 보려 하지 말 것. 지속할 수 있는 자원을 확보할 것.(씁쓸)
척박한 문화의 전장에서 고립되지 않는 작은 방편으로 피자 말고 도미노의 일독을 권한다. 동인들은 도미노를 “우리시대의 교양”이라고 지칭했다.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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