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자는 드물다. 신의 대신 정의를 택한 대가가 배신자란 낙인뿐이기 십상이어서다. 편을 가르면 눈이 먼다. 맹신을 울타리 삼는 게 불의다. 신념이 걷혀야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요즘 극장가 흥행 1위는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다룬 영화 ‘제보자’다. (…) 임순례 감독은 선악대비 등 극적 장치로 감정을 자극하는 대신 무엇이 대중의 광기를 불렀고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가 같은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제보자’ 윤민철 PD의 실제모델인 한학수 MBC PD는 최근 낸 취재록 개정판 ‘진실, 그것을 믿었다’에서 황우석 사태를 일러 “우리 사회의 맨살을 숨김없이 드러낸 21세기 대한민국호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썼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너나없이 내린 진단 그대로다. (…) 한 PD의 지적처럼 사건을 가장 쉽게 처리하는 방법은 희생양 찾기다. (…) 황우석 신화가 무너졌어도 사태를 낳고 키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은 여전하듯이, 선장과 유씨 일가, 정장을 단죄한다고 참사의 근원인 고장 난 국가시스템이 복원되지 않는다. 두 사건 모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숱한 사실들을 캐내 실체적 진실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끈질기게 이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황우석 사태 당시 얼떨결에 취재팀에 끌려 들어가 두 달 넘게 씨름했다. 의혹이 하나 둘 사실로 드러나면서 충격과 함께 희망도 품었다. 이 엄청난 사태를 겪고도 우리 사회가, 특히 언론이 바뀌지 않을 리 없다는, 그러니 전화위복이 되리라는. 그러나 유효기간은 몹시 짧았다. 대다수 언론이 반성문을 썼지만 내용은 깊이 없이 어설펐다. 끝까지 황씨를 비호한 일부 과학기자들은 탈없이 자리를 지켰고, 비열할 정도로 PD수첩을 공격했던 한 신문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 그 밖에도 미완의 과제들이 숱하게 많았지만, 나는 달라지지 않는 세상을 탓하고 섣불리 희망을 품었던 스스로를 참 순진했다 한탄하며 그 사태로부터 멀어졌다.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문학동네 세월호 특집에 실린 소설가 황정은의 고백은, 나의 순진함은 희망을 품었던 그 자체가 아니라 나의 노고를 보태지 않고도 세상이, 언론이 저절로 바뀌리라 여겼던 것임을 아프게 일러준다. ‘제보자’의 윤민철 PD는 마음이 흔들려 인터뷰를 거절한 제보자를 탓하는 후배 PD에게 “제보가 그렇게 쉬운 거였으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었겠냐”고 묻는다. 내부 고발뿐이랴. 임 감독의 바람처럼 “또 다른 제보자인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절이다.”
-황우석 그 후, 세월호 이후(한국일보 ‘메아리’ㆍ이희정 논설위원) ☞ 전문 보기
“기자 생활을 ‘한겨레’에서 했던 탓에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언론 보도에 항의하거나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 하지만 제일 섬뜩했던 건, 2005년 이른바 ‘황우석 사태’ 때였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반대하며 시위하던 사람들은, 과시나 으름장의 차원을 넘어 열렬하고 집요해 보였다. 황 박사 연구가 난치병 치료의 희망을 담보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이게 공사구별 못 하는 사회 시스템, 뒤틀린 애국주의, 시류에 영합한 자칭 보수 언론의 보도와 맞물려 실제로 보도를 못 하게 하고 연구 성과의 검증을 막아버릴 지경에 이르자 생각이 달라졌다. ‘대중이 이렇게 무서워질 수 있구나!’ 황우석 사태를 다룬 영화 ‘제보자’를 봤다. (…) 방송사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윤 피디(박해일)와, 황우석 박사를 연상하게 하는 이 박사(이경영)가 좋은 편, 나쁜 편의 양끝에 서서 한쪽은 진실을 파헤치려 하고 한쪽은 감추고 덮으려 한다. 이런 구도의 영화라면 으레 정의를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 사연을 만들어 넣는다. (…) 이 영화의 윤 피디에게 그런 게 없다. 직업적 열정과, 제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직업적 윤리의식만으로 달려간다. (…) 다음은 나쁜 편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충분히 나쁘게 만들어 관객이 혈압 올리는 순간을 유도할 텐데, 이 영화는 그런 순간을 안 만든다. 이 박사를, 옳지 않지만 이해는 가거나, 최소한 정상참작은 해줄 수 있는 인물로 그린다. (…) 한쪽으로 몰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의 혈압은 안 오를지 모르지만, 사회가 너무 쉽게 진실의 반대쪽으로 휩쓸려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 ‘제보자’의 이런 전략은, 자극적이고 강력한 드라마를 원하는 지금 한국의 분위기에서 보면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제보자’의 남다른 점(10월 7일자 한겨레 ‘야! 한국사회’ㆍ임범 대중문화평론가)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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