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북한 최고 권력집단을 국제 형사법정에 세우려는 움직임이 확인됐다. 유엔은 8일(현지시간) ‘북한 내 반(反)인권행위 관련자를 국제형사기구에 회부한다’는 내용으로 유럽연합(EU)이 작성한 북한 인권결의안 초안을 비공개로 회람시켰다. 회람 대상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결의안을 공동 제의할 50여개 국가다. 이 초안은 북한 정권의 반인도적 범죄행위 실태와 김 제1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를 반인권 혐의로 국제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권고한 올해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보고서와 같은 맥락으로 작성됐다.
하지만 결의안 관례상 비동맹국가 등 북한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국가들의 반발을 의식해 김 제1위원장 등의 실명은 거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초안에 불과해 회람과 여러 차례 심의를 거치면서 내용이 다소 변경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지도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물리적으로 회부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북한이 ICC 관할국이 아닌데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ICC 법정에 선 국가원수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공교롭게도 이날 케냐의 우후루 케타냐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ICC 법정에 섰다. 지난해 3월에는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항소심에서 50년형을 선고 받았다. 국가원수로 국제법정에 섰던 첫 사례는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였다.
어쨌거나 유엔의 이 같은 움직임은 북한을 심각하게 압박하는 것이다. 설령 결의안이 유엔 총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더라도 회람과 심의 과정에서 북한의 인권탄압 실태가 널리 알려지는 것이 북한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올해 2월 COI가 북한의 인권상황과 국제사회의 신속한 대응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데 이어, 3월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 인권위원회가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이 같은 움직임에 다급해진 북한은 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유엔본부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한 인권관련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최명남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북한에는 정치범수용소가 없으며, 실질적으로 감옥 같은 것도 없다. 다만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정신적으로 향상되는 노동교화소는 있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의 압박에 대해 적극 대응하려다 오히려 노동교화소의 존재를 인정하는 꼴이 됐다.
문제는 앞으로 우리 정부의 대응이다. 유엔총회 결의안 작성에는 한국도 참여하고 있어 북한이 반발할 경우 남북관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북한이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거나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으로 반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는 남북 관계와 국제적 상황을 면밀히 살펴 신중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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