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이후 착공 터널 64%가 암반 무너짐 막는 록볼트 적게 시공
공사비 과다청구 187억원 빼돌린 건설사 현장소장 등 무더기 기소
건설업체들이 공사비를 빼돌려 2010년 이후 착공한 고속도로 터널 121개 중 64%에서 터널 붕괴를 막기 위한 암석지지대(록볼트)가 설계보다 적게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주문진과 속초를 잇는 한 터널은 설계상 필요성이 인정된 록볼트 중 70%가 설치되지 않은 위험 천만한 상태에서 개통됐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한국도로공사는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문홍성)는 고속도로 터널공사 핵심 자재인 록볼트(암석지지대)를 설계보다 적게 사용하고 공사대금을 가로채는 등의 혐의로 하도급 건설업체인 선산토건 현장소장 이모(56)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시공사 동부건설 김모(48) 현장소장 등 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9일 밝혔다. 또 한국도로공사의 점검에 대비해 거래명세표와 자재검사대장 등 관련 서류를 위조한 혐의(사문서위조)로 대우건설 박모(50) 현장소장 등 7명을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겼다. 록볼트는 터널을 뚫는 도중 암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암반에 삽입, 설치하는 주요 자재다. 가격은 개당 1만7,000~3만원 정도다.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의뢰에 따라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10년 이후 착공한 고속도로 공사 76개 공구 121개 터널을 전수 조사한 결과, 38개 공구 78개 터널에서 록볼트가 설계보다 적게 시공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평균 27%의 록볼트를 줄여 시공해 공사비 과다 청구액만 187억원에 달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 가운데 정도가 심한 곳은 영동~옥천 1공구, 주문진~속초 5공구, 담양~성산 6공구, 홍천~안양 11공구, 동홍천~양양 6ㆍ14ㆍ16공구, 상주~영덕 5공구 등 8곳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구속 기소된 이씨는 영동~옥천 1공구에서 선산토건 현장소장으로 일하며 설계수량 1만7,310개인 록볼트 중 4,046개를 사용하지 않아 8억5,000여만원을 빼돌리는 등 총 15억6,550여만원의 공사대금을 편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산토건에 하도급을 준 시공사 계룡건설산업 신모(55) 현장소장 역시 이씨와 짜고 25억4,800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주문진~속초 5공구에서는 구산토건 양모(47) 현장소장이 록볼트 설계수량이 1만8,350개인데도 실제로는 5,930개만 사용, 고작 3분의 1만 시공하면서 8억여원의 공사대금을 빼돌렸다. 원청업체인 삼환기업 송모(50)씨 등 2명은 조작된 서류를 도로공사에 제출하며 이 같은 범죄 사실을 감추려고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물산이나 동부건설, 대우건설 등 대형건설사 직원들도 도로공사의 점검이나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관련 서류를 조작했다 덜미가 잡혔다.
검찰 관계자는 “다른 자재 투입으로 비용이 증가하거나 인근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느라 발생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자재값을 부풀려 공사비를 더 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부실시공이 적발된 터널의 안전성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한국도로공사에 각 터널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의뢰했으며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8월부터 사용자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현장 관리 감독 인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등의 터널 시공관리 개선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발주처인 한국도로공사는 관리 감독을 부실하게 한 책임이 인정되지만 검찰은 관련법 미비를 이유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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